재일교포는 왜 생겨났는가?귀환 거부한 한국과 영원히 남아있는 재일교포
2022-06-15
카테고리: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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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을 거부한 한국,환영한 북한
전후 재일동포 조선인 귀환사업은 한국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됐다.북한은 귀국 시 배 비용은 북한이 부담하겠다고 선언. 수용을 환영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월북한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서의 제주도 4·3사건이나 여수·순천사건을 피해 일본에 온 전후 이주자도 많다.귀환 사업은 일본 적십자사와 조선 적십자사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귀환사업을 방해하려던 한국
남측은 이 귀환사업에 반발해 일본 어부들의 억류 연장, 무역단교, 테러공작원을 보내 니가타일 적폭파 미수사건을 일으켜 방해 계획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귀환사업의 일본측 요원 암살, 니가타항으로 향하는 철도 선로 폭파 등이 계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국으로의 귀환은 국민의 권리
한국이 귀환사업에 반대한 것은 한국이 귀환을 거부하고 북한이 수용함으로써 국제적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주지 선택의 자유라는 국제법상 인도주의에 따라 귀국을 희망하는 사람에 대해 양국 정부가 협력해야 대량 귀환이 이뤄질 수 있다.게다가 전후의 처리는 원상 복귀를 목표로 하는 것이 대전제가 된다.
국교정상화에서도 거부한 한국정부
1965년 협정 안에서 한일 지위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국교정상화 시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어떻게 귀환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일본이 제기했을 때, 한국정부는 무려 이를 다시 거부했다 .이에 따라 일본에 거주하게 한 협정이 한일지위협정이다.
자국민을 잘라버리는 이상사태
즉 한국정부는 자국민을 잘라버리고 저버린 .결과적으로 일본에 잔류한 한반도인들을 지원한 것은 북한이었다.현재도 조선학교에는 북한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그래서 조총련, 조선학교는 북한화됐다.
아울러 읽고 싶다
김정은과 도라에몽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김정은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는 재일 2세
김정은은 8세 때인 1991년 5월 12일 브라질 여권으로 형 김정철로 보이는 소년과 함께 일본에 입국했다.비자는 오스트리아에서 취득했다고 한다.이때 형제는 10명 정도의 어른이 동반되어 있었다.
김정일의 셋째 부인이자 형제의 어머니이자 재일교포 출신인 고용희도 며칠 늦게 일본에 입국해 형제와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정은은 1991년을 전후해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2001년 5월에는 김정남이 중국인 명의의 도미니카공화국 위조여권을 갖고 입국하려다 나리타공항에서 구속됐다.김정남은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강제 퇴거돼 디즈니랜드에 가는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는 오사카시 이쿠노구 쓰루하시에서 조선인 아버지 고경택과 어머니 이맹인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이며 9세 때 북한으로 이주했다.
재일 2세 어머니의 영향일까.김 일가의 자녀들에게는 일본이 침투해 있는 듯하다.김정은의 전속 요리사는 후지모토 겐지가 맡고 일식을 대접한다.북한에서는 적(자본주의 국가)의 문화 등을 보거나 사용하면 노동 강화, 고문, 판매자는 처형 등을 당한다.
사진 평양육아원 애육원 현지지도 김정은 2014년10월26일 노동신문
혈통주의 북한 지도자는 백두산 혈통이어야 한다는데 김정은은 재일 2세의 자녀인 것이다.
보통 나라의 결단이 아니다.자국민 귀환을 거부하는 이상사태다.덧붙여서 일본의 귀환 사업은 일본, 중국 정부의 협력 하에 이루어졌다.
일본인 귀환사업
만주 지역에서의 일본인 귀환은 1946년부터 실시되어 중국 항구에서 100만 명 이상의 일본인이 귀환했다.국공 내전을 거치면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은 국교를 맺지 않아 중단될 수밖에 없었고 집단 인양을 종료했다.중일 국교정상화 후 1981년부터 중국 잔류 고아의 인양이 개시되어 2,000명 이상이 일본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현재도 계속되는 일본의 귀환 사업
잔류 고아란 일본인 인양 시 배가 나가는 시간과 승무원 정수는 정해져 있어 수십 km를 계속 걸어 행진을 멈추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그 중 많은 여성이나 아이들이 걷지 못하고 가족과 생이별하여 인신매매 등으로 중국인 아내가 되거나 입양되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일시귀환원조, 영주귀국원조, 현지 정착, 자립원조 등을 지금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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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국민이 굶어죽는 현상 - 모든 것은 미사일 제조에 쓰인다.현존하는 이씨조선.
새든 곤충이든 스스로 식량을 얻어 생활한다.인간이 굶어죽는다면 신기한 일이다.동물에 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식량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북한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국민이 번 것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미사일로 모습을 바꾸다.
김정은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국민이 굶어죽는다면 그 돈을 국민의 식량 수급에 충당하면 된다.국민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김정은 일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이씨 조선시대에도 왜 국민의 절반이 노비였고 아사자가 줄을 잇지 않았을까.국민이 일궈 얻은 식량은 어디론가 사라져 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에서는 남자 10명 중 1명이 군인이라고 하니 놀랍다.전체 인구가 2,597만명 중 128만명이 군인으로 여겨진다.게다가 이건 노인이나 아이들은 제외되는 거니까 노동인구 중에서 봤을 때 더 비율은 높아진다.즉 그만큼의 남성이 사회의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경제적으로 왜곡된 사회형태를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해소하겠다는 것인가.군인 인건비보다 핵미사일이 훨씬 비용이 저렴할까.어쨌든 현대는 유엔 회원국은 내정간섭 아래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핵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김 왕조는 반석이 된다.영원히 이어지는 이씨조선이다.
북한을 파탄낸 스포츠 축제 - 매스게임으로 친숙한 노동절 스타디움은 이때 건설되었다.
올림픽 개최 희망 북한
축제 개최를 둘러싸고 첫 부모와 자식 대립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한을 파탄낸 스포츠 축제
스포츠 축제가 다수의 아사자를 발생시켰다
북한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진 계기 중 하나로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있다.한국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는 것에 맞서 북한도 올림픽 개최에 나서지만 IOC 위원장 사마란치는 평양을 시찰했고 북한 개최는 어느 기회에든 말하고 귀국했다.
세계청년학생축제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열리는 스포츠·문화·예술을 포함하는 축제이다.
김정일이 이 축제를 자국 개최하자는 제안에 대해 아버지 김일성은 경제상황을 이유로 단호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김정일은 남한에서 올림픽을 할 것이니 북한은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고, 이는 처음 부자가 정면충돌한 문제였다.
결과적으로는 김정일에게 권력이 넘어가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었고 결정은 아들인 김정일 쪽으로 기울었다.즉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제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은 1987년에 일어났다.항공기 폭파범은 '서울올림픽의 한국 단독개최와 참가신청 방해를 위해 대한항공기를 폭파하라'는 지령에 따라 범행을 저지른 테러사건이며, 이처럼 한국에서의 올림픽 개최는 북한의 체면을 구기는 이벤트 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매스게임과 탄도미사일 전시행진 등이 진행되고 있어 친숙한 노동절 스타디움은 이때 건조됐으며 다양한 호텔도 들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손님을 12,000명까지 무료로 초청했다.
당시 북한의 GNP 대부분이 투입돼 개최된 막대한 국비를 투입한 축제는 북한 재정을 위기 상황으로 몰아갔다.
이후 북한 내 배급이 중단되면서 대량 아사자가 발생하게 된다.당시 북한 외화의 60%?70%를 획득한 곳은 함경남도라는 지역이다.가장 먼저 집단 아사자를 낸 것이 함경남도 광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북한 국가가 크게 기울어진 것은 이 스포츠 축제를 둘러싼 많은 자금 투입에 있었습니다.그것은 한국에 대항하기 위한 허세의 산물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종전의 기본합의를 얻었다는 한국정부 그런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 측이 최근 주장하고 있는 625전쟁 종전을 위한 북-중 원칙 합의는 정전협정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협정에는 '최종적인 평화해결이 성립될 때까지 조선에서의 전쟁행위와 모든 무력행사의 완전한 정지를 보증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전협정은 평화적 해결을 위한 잠정적 무력행사 중단을 의미하며 종전을 위한 원칙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정전협정 제13절(d)은 남북한이 손상되거나 낡은 장비의 재배치 외에는 한반도에 새로운 무기를 반입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으나 미국은 이를 파기하고 1958년 핵무장한 MGR-1과 M65280mm 캐논포가 한국에 배치된 지 1년 만에 중국과 소련을 사정거리로 잡은 핵무장한 MGM-1이 가세했다.
1975년 유엔총회는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대체하는 것과 유엔군을 해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은 대한항공기 사건을 이유로 평화조약을 위한 대화를 거부했다.
2009년 북한은 더 이상 정전협정에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정전협정은 파기상태로도 보이며 현재는 정전협정 하의 휴전이 아니라 단지 전쟁에 이르지 않은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18년 3월 시진핑이 미국·중국·북한·한국 등 4개국 평화협정을 포함한 '새로운 안보 틀'을 미국에 촉구했지만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찬반을 표시하지 않았다.
2018년 4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환영한다고 말했고,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평화협정 체결을 목표로 항구적 평화구축을 위한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문재인과 김정은 위원장은 합의했다.
실제 문제로서 4자에 의한 기본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굳이 말하자면 정전협정 해석에 따라 방향성으로 합의했을 뿐이다.합의란 합의 조건이 따른다.
그 조건의 합의가 먼저 필요한데 그게 없다.
오히려 정전협정은 유명무실해졌고 서명국들의 이해관계도 달라졌다.미-러는 북한은 이대로 완충지대로 남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남북 양자간에 평화조약을 맺어버리면 그만이다.정전협정이 있기 때문에 양자간에 할 수 없다는 이치 사태가 신기하다.오히려 남북이 대화가 안 되니까 도와달라는 것처럼 보인다.
대화도 할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평화조약은 의미가 있을까.
한국인에게 이 질문을 하면 정전협정 서명국의 합의가 없으면 평화조약을 맺을 수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남한도 북한도 독립국가이기 때문에 양자간 조약 체결은 가능합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11일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러시아와 북한 개인에 제재를 가했다.
[워싱턴 12일 로이터] - 미 재무부는 12일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에 따라 북한 개인 6명과 러시아 개인 1명 및 1단체에 제재 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의 무기 개발용 물자의 조달에 관여했다고 하고 있다.
한국군에 따르면 북한은 11일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있는 비상체 1발을 발사했다.북한이 비상체를 발사하는 것은 5일 이후 올해 두 번째다.
또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입회 아래 극초음속미사일 발사실험 를 11일 진행해 성공했다고 12일 전했다.김정은이 미사일 발사를 공식 시찰한 것은 2020년 3월 이후 처음이다.
재무부는 이번 제재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전진을 막고 무기 기술을 확산시키려는 시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넬슨 재무차관(테러리즘금융정보담당)은 성명에서 북한이 무기용 제품을 불법 조달하기 위해 해외 대표를 이용하고 있는 데 대한 조치라며 북한의 최근 미사일 발사는 국제사회가 외교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지된 프로그램을 계속 전진 시키고 있는 또 다른 증거라고 지적했다.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최근 며칠간 있었던 일들은 사태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다는 우리의 신념을 강조하는 것이라며 미 행정부는 계속 북한과의 외교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번 제재가 지난해 9월 이후 이뤄진 6차례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른 것이라며 모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한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제재 대상이 된 러시아에 거점을 둔 북한 국적 1명과 러시아 국적 1명, 러시아 1명에 대해 대량살상무기 확산 및 운반수단과 관련된 활동과 거래를 했다고 단정했다.
북한 국적의 한 명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무기 개발 관련 북한 기관의 대표자로 러시아로부터의 통신 관련 기기 조달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이 기구의 중국 지부를 대표하는 4명과 러시아에 거점을 둔 1명의 북한인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합금강이나 소프트웨어, 화학제품의 조달 등에 관여했다고 한다.
트럼프 전 행정부의 제재 전문가, 앤서니·루제로씨는 새로운 제재에 대해 「좋은 스타트다」라고 한 다음,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 제재 압력을 계속 강화할 필요 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치에 따라 제재 대상자의 미국 관련 자산은 동결되고 대상자와의 거래도 전면 금지된다.
주목점은 개인에 대한 제재라는 점입니다.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는 러시아 기술자가 관여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개인을 특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는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 2세-아버지는 재일조선인으로 전후 귀환사업으로 가족과 북한으
김정은의 어머니 고희훈(高容姫)은 재일교포 2세이자 일본 오사카 출생이다.이쿠노 코리아 타운 부근의 쓰루하시(鶴橋)에서 태어났다.1962년경 부모와 함께 북한으로 귀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용희의 아버지는 제주 태생으로 1929년 오사카로 건너간 재일교포로, 육군성이 비밀로 지정한 오사카의 '히로타 군복공장'에서 간부로 일하고 있었다.북한과 조총련이 주도한 귀환 사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제99회 귀환선을 타고 고용희를 포함하여 아버지의 아내 중 한 명인 어머니의 자녀 3명을 데리고 함경북도 명나라에 정착하였다.
평양음악무용대학(현 김원균 명칭 음악종합대학) 무용과를 졸업하고 1971년 만수대 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고용희로 개명했다.1972년에 공훈 배우 칭호를 받는다.1973년 만수대 예술단이 일본 공연을 성황리에 마치면서 일본 출신이었던 고용공주가 주목을 받으며 유명해졌다.고용희는 기쁨조에 들어가고 김정일의 마음에 들어 세 번째 정부가 된다.김정일로부터는 일본식으로 '아유미'라고 불렸다.북한의 공식 기록에는 제주도 북제주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고용희 이후 2000년대 이후 유선암으로 치료를 받다가 2003년 암이 재발, 사실상 치유가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2003년 9월 교통사고로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그해 프랑스 의료진이 극비리에 방북한 데 이어 2004년 파리의 한 병원에서 종양 및 뇌 관련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2002년 5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국가보위부장직을 맡게 된 김정남이 일본에 위조여권으로 입국했다가 발각되었다.추방되고 국가보위부장직도 해임됐다.이때 일각에서는 고용희가 김정남의 후계자 선정을 견제하기 위해 위조여권으로 일본을 방문했다는 정보를 흘렸다는 설이 있다. 고용희는 2004년 8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치료 중 심장발작, 암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로부터 3개월 전인 5월경에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이후 공개된 묘비에서 2004년 5월 24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고용돼 일본 요리를 대접하고 김정은의 어린 시절 놀이 상대를 맡았다고 한다.아마도 고용희와 일본이라는 키워드는 관련이 있을 것이다.어쨌든 백두산 혈통이라고 하기에는 좀 복잡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