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부동산 사기 엘리트 관료 잇따라 경매에 참여시켜 국고에 납금
2021-06-28
카테고리: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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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북한에서 부동산 거품이 있었다.2,000만엔 이상의 부동산 등 저 경제 수준의 공산국 국민이 살 수 없는 물건이다.북한은 항상 외화가 부족하고 지하경제는 북한의 큰 경제기반으로 지탱하고 있다.표면적으로는 불법으로 알려진 외국 제품과 DVD로 거액의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평양 모란봉 지역 흥무동 고급 빌라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정은이 국가 주도의 경매를 진행했다.경매 당시 당국은 돈의 출처와 낙찰자 배경은 묻지 말 것을 지시했다.암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이 적발될 염려가 없기 때문에 해외에서 핵미사일 개발 부품을 조달 연구 분석하는 11개 국 기관에 근무하는 엘리트 관료들이 잇따라 경매에 참여하면서 구입금액은 약 2,300만엔나 됐다.
국가 지도자가 스스로 부동산 사기
2년 뒤인 2019년 말 김정은은 돌연 11국 간부에게 신축 고급 아파트를 제공하겠다고 나섰고 일반 직원에게는 중간 지역 아파트가 주어지고 만경대 지역 신축 아파트는 과장급에게 주어진다.누구도 김정은의 아파트 제공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이들은 고급 빌라를 잇따라 포기하고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물론 원래 절반 가까이 방이 비어 있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계속 떨어져도 아무도 살 수 없다.
김정은은 경매에서 엘리트 간부에게 고급 빌라를 매도한 뒤 질 나쁜 신축 아파트로 옮기도록 하고 차액을 국고에 입금했다는 얘기다.2021년 현재 국유주택 개인매매 근절 지시를 내리는 등 부동산 가격이 10분의 1 하락했다.
ソース記事:Yahoo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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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는 왜 생겨났는가?귀환 거부한 한국과 영원히 남아있는 재일교포
귀환 거부한 남한, 환영한 북한
귀환사업을 방해하려던 한국
자국으로의 귀환은 국민의 권리
국교정상화에서도 거부한 한국정부
자국민을 잘라버리는 이상사태
일본인귀환사업
현재도 계속되는 일본의 귀환사업
전후 재일동포 조선인 귀환사업은 한국 정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됐다.북한은 귀국 시 배 비용은 북한이 부담하겠다고 선언. 수용을 환영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월북한 사람들 중에는 한국에서의 제주도 4·3사건이나 여수·순천사건을 피해 일본에 온 전후 이주자도 많다.귀환 사업은 일본 적십자사와 조선 적십자사가 공동으로 진행했다.
남측은 이 귀환사업에 반발해 일본 어부들의 억류 연장, 무역단교, 테러공작원을 보내 니가타일 적폭파 미수사건을 일으켜 방해 계획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귀환사업의 일본측 요원 암살, 니가타항으로 향하는 철도 선로 폭파 등이 계획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귀환사업에 반대한 것은 한국이 귀환을 거부하고 북한이 수용함으로써 국제적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주지 선택의 자유라는 국제법상 인도주의에 따라 귀국을 희망하는 사람에 대해 양국 정부가 협력해야 대량 귀환이 이뤄질 수 있다.게다가 전후의 처리는 원상 복귀를 목표로 하는 것이 대전제가 된다.
1965년 협정 안에서 한일 지위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국교정상화 시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어떻게 귀환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일본이 제기했을 때, 한국정부는 무려 이를 다시 거부했다 .이에 따라 일본에 거주하게 한 협정이 한일지위협정이다.
즉 한국정부는 자국민을 잘라버리고 저버린 .결과적으로 일본에 잔류한 한반도인들을 지원한 것은 북한이었다.현재도 조선학교에는 북한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그래서 조총련, 조선학교는 북한화됐다.
보통 나라의 결단이 아니다.자국민 귀환을 거부하는 이상사태다.덧붙여서 일본의 귀환 사업은 일본, 중국 정부의 협력 하에 이루어졌다.
만주 지역에서의 일본인 귀환은 1946년부터 실시되어 중국 항구에서 100만 명 이상의 일본인이 귀환했다.국공 내전을 거치면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일본은 국교를 맺지 않아 중단될 수밖에 없었고 집단 인양을 종료했다.중일 국교정상화 후 1981년부터 중국 잔류 고아의 인양이 개시되어 2,000명 이상이 일본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잔류 고아란 일본인 인양 시 배가 나가는 시간과 승무원 정수는 정해져 있어 수십 km를 계속 걸어 행진을 멈추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그 중 많은 여성이나 아이들이 걷지 못하고 가족과 생이별하여 인신매매 등으로 중국인 아내가 되거나 입양되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일시귀환원조, 영주귀국원조, 현지 정착, 자립원조 등을 지금도 하고 있다.
북한에서 국민이 굶어죽는 현상 - 모든 것은 미사일 제조에 쓰인다.현존하는 이씨조선.
새든 곤충이든 스스로 식량을 얻어 생활한다.인간이 굶어죽는다면 신기한 일이다.동물에 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식량을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북한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국민이 번 것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미사일로 모습을 바꾸다.
김정은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국민이 굶어죽는다면 그 돈을 국민의 식량 수급에 충당하면 된다.국민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김정은 일가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이씨 조선시대에도 왜 국민의 절반이 노비였고 아사자가 줄을 잇지 않았을까.국민이 일궈 얻은 식량은 어디론가 사라져 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에서는 남자 10명 중 1명이 군인이라고 하니 놀랍다.전체 인구가 2,597만명 중 128만명이 군인으로 여겨진다.게다가 이건 노인이나 아이들은 제외되는 거니까 노동인구 중에서 봤을 때 더 비율은 높아진다.즉 그만큼의 남성이 사회의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경제적으로 왜곡된 사회형태를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해소하겠다는 것인가.군인 인건비보다 핵미사일이 훨씬 비용이 저렴할까.어쨌든 현대는 유엔 회원국은 내정간섭 아래 다른 나라를 공격할 수 없다.핵미사일을 배치할 경우 김 왕조는 반석이 된다.영원히 이어지는 이씨조선이다.
북한이 14일 올해 3차 미사일 시험발사 일본 EEZ 밖으로 착탄
어제 북한이 올해 들어 세 번째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이번 탄도미사일은 400km가량 비상해 일본 EEZ 밖으로 착탄 한 것으로 알려졌다.올해 들어 빈번히 북한은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12일 부과된 미국의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풀이된다.애초 북한은 왜 미사일 실험을 멈추지 않는가.
북한에서는 5명 중 1명이 군인이라고 한다.김 왕조를 지키는 군대이다.김정은은 나라를 자위하기 위한 미사일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독재정권하의 군대일 뿐이다.북한은 만성적인 식량난, 자원난이 계속되고 있다.국민이 굶어죽어도 미사일 개발에 많은 국비를 투입한다.미사일 개발 비용으로 몇 명의 국민이 구할 수 있을지 생각하면 이 모순을 깨닫기 쉽다.
5명 중 1명이라면 국민의 20%는 생산과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지 않는다.군인은 전쟁이 없으면 훈련과 경비가 주된 일이 된다.즉 나머지 80%가 북한의 GDP를 지탱하는 노동력이 된다.그만큼 빈곤의 국민의 20%가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것이다.북한 병사 대부분이 영양실조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판문점에서 한국으로 탈출한 북한병은 등 뒤에서 북한병에게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 한국에서 수술을 했는데 장내에서는 대량의 기생충 가 발견됐다.
북한 경제는 이제 나라를 경영할 수준이 아니며 병사들은 작전행동을 할 만한 체력이 없다.그래서 비용이 싼 핵미사일 개발인 셈이다.병사를 아무리 길러도 육전 등을 치를 수 있는 성능은 이제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핵미사일을 멈추고 군대가 나라를 지킨다는 선택지는 이제 없기 때문입니다.
GDP 대비 24%를 군사비로 쓰는 북한 평화도 랭킹에서는 151위 세계평화도지수 2021에서 북한은 GDP 대비 군사비율이 24.0%로 조사 대상국 중 가장 많았다.평화의 정도를 수치화한 GPI 순위에서 북한은 조사 대상 163개국·지역 중 151위를 차지해 '매우 낮은' 수준으로 분류됐다.
GDP대비 최고수준으로 군사비로 사용하고 평화도는 매우 낮은 수준 ㅎㅎ 수고하세요.지금까지처럼 국력을 자멸을 위해 쓰십시오.
김정은과 도라에몽 일본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김정은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는 재일 2세
김정은은 8세 때인 1991년 5월 12일 브라질 여권으로 형 김정철로 보이는 소년과 함께 일본에 입국했다.비자는 오스트리아에서 취득했다고 한다.이때 형제는 10명 정도의 어른이 동반되어 있었다.
김정일의 셋째 부인이자 형제의 어머니이자 재일교포 출신인 고용희도 며칠 늦게 일본에 입국해 형제와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정은은 1991년을 전후해 여러 차례 일본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
2001년 5월에는 김정남이 중국인 명의의 도미니카공화국 위조여권을 갖고 입국하려다 나리타공항에서 구속됐다.김정남은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강제 퇴거돼 디즈니랜드에 가는 목적은 이루지 못했다.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는 오사카시 이쿠노구 쓰루하시에서 조선인 아버지 고경택과 어머니 이맹인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 이며 9세 때 북한으로 이주했다.
재일 2세 어머니의 영향일까.김 일가의 자녀들에게는 일본이 침투해 있는 듯하다.김정은의 전속 요리사는 후지모토 겐지가 맡고 일식을 대접한다.북한에서는 적(자본주의 국가)의 문화 등을 보거나 사용하면 노동 강화, 고문, 판매자는 처형 등을 당한다.
사진 평양육아원 애육원 현지지도 김정은 2014년10월26일 노동신문
혈통주의 북한 지도자는 백두산 혈통이어야 한다는데 김정은은 재일 2세의 자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