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와 세계의 변모와 일본식민지를 경험한 아시아에서 지지받고 신뢰받는 일본
2021-10-25
카테고리: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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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화하지 않은 일제 강점기
세계사는 대항해시대를 맞아 크게 변모했다.아시아는 차례차례 서양의 식민지로 여겨져 착취당하고 노예처럼 취급되었다.그러나 반면 식민지화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발전하여 적지 않은 생활이 향상되었다.
국내에서 백인과 원주민의 권리 차이가 역력한 가운데 생활은 전체적으로 향상된 측면이 있다.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왜 일본이 지지를 받고 있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 일본은 아시아인을 노예화하지 않았다는 점과 근대 국가를 자신의 자국민의 힘으로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일체를 그 나라에 대해 교육한 것이다.
다시 돌아온 유럽 열강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 철군 후 말레이시아로 돌아와 다시 식민지화를 시도한 영국은 일제강점기 이후 말레이시아가 과거 말레이시아가 아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전에는 무저항으로 식민지가 되어 간 아시아 국가들은 용맹과감하게 일어나 유럽 열강과 싸워 차례로 독립을 쟁취해 나갔다.
아시아의 대부분은 일본에 감사하고 있다
유럽의 식민지로 지목된 아시아 국가들은 유럽에 대해 사과 요구 등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일본에 대해서도 하지 않는다.이는 스스로가 전진하고 있다는 실감을 얻느냐의 차이이며 당사자 의식이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특수한 전후관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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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는 남중국해의 균형을 바꿀 것인가.그것은 또한 대만 총통 선거에 영향을 준다
두테르테 대통령과 친밀한 두 사람이 출마
미국과 거리를 두고 중국에 침략당하다
남중국해에는 일본과 공통된 대만
2022년 5월 필리핀 대통령 선거는 주목된다.대통령 후보로는 페르난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 상원의원이 입후보했고 현 도테르테 대통령의 딸인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부통령에 출마 의사를 밝혔다.둘 다 두테르테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로 당선 전 콤비를 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딸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자신은 부통령에 출마할 뜻을 밝혔으나 비판을 받아 단념했습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반미적 정책을 취하고 미군 지위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하거나 보류하는 등 미군을 배제하는 정책을 취했다.
중국에 접근했지만 남중국해에서는 100척 이상의 중국 선박이 며칠째 대기하며 위협을 거듭해 , 이 해역을 보내라고 해 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두테르테를 국민이 나약하다고 비판한 후의 선거가 된다.
페르난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은 친미 노선이자 계엄령을 내린 인물로 유명하다.
아들 마르코스가 어떤 방침인지가 아직 일본에서는 보도되지 않고 있다. 필리핀이 2022년 대선 이후 정책을 전환하고 쿼드를 비롯한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공조를 표명할 경우 2024년 대만 총통선거에도 영향을 미친다.남중국해는 대만 필리핀 베트남이 둘러싼 바다이기 때문이다.중국은 필리핀에도 선거 간섭을 시작했다.
현재 대만이 열쇠가 되는 나라라는 것은 일본에서 보면 일본의 영해를 지키는 것과 동시에 남쪽에서는 남중국해의 중요한 나라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한국은 선택될 가능성이 가장 낮은 나라
일본과 한국의 동남아시아 파트너십 제공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2020년 조사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지역 정책 입안자들은 일본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안보 파트너로 간주했고, 한국은 나열된 7개의 선택지 중에서 선택될 가능성이 가장 낮은 나라였습니다.
한국의 외교정책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그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정체된 분쟁 속에서 갇혀 있었습니다.한국은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지만, 이 지역에 대한 한국의 관여는 주로 미국의 보조적인 것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의 역사적 영향은 훨씬 컸다.
일본은 직접적인 방위 협력을 실시할 수는 없지만 동남아시아 국가에 관여하기 위해 정곡을 찌른 지원을 이용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은 동남아시아 국가의 연안 경비대의 능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일본 연안 경비대의 건설과 기술 지원 노력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해사 클레임을 집행하는 능력을 향상시킵니다.
한국도 동남아시아에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지원하고 있지만 중국의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동남아의 전략적 이익에 대해 중국과의 갈등을 피하려는 한국의 시도는 안보 파트너로서의 한국에 대한 열의를 북돋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역설적이지만 동남아시아 정책 입안자들이 한국과의 안보 파트너십에 부정적으로 기울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한 중심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특히 중국에 관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민감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이정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이 점에서 안전보장 파트너로서의 일본은 점점 영향력이 증가하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매우 구체적인 이익을 제공합니다.
일본은 일본 입장에서 오랜 역사상의 관계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뿐입니다.한국과는 신뢰가 다르다는 것을 동남아시아 자신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국 왕국은 식민 지배를 경험하지 않았다 - 이씨 조선과는 전혀 다른 국가 운영 - 조선은 태국처럼
한반도는 독립국이 될 수 있었을까
독립을 유지한 유색인종의 나라
완충지대로서의 지리조건을 이용
균형을 계속 깨부수던 이씨조선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맺어진 병합 조약
태국과 일본은 독립국가였다
일본이 오지 않으면 한반도는 독립한 채였다는 이치를 가끔 듣지만 너무 신기한 얘기다.당시의 세계를 둘러보면 착취하는 쪽과 착취당하는 쪽으로 색깔이 나뉘어져 가던 시절이었다.
백인이 유색인종을 지배한다는 것이다.아프리카 대륙이나 아시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아메리카 대륙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런 세계 속에서 한반도만이 독립국가로 존속한다는 것은 상당히 무리가 있는 이야기로 들린다. .
그 중 태국은 아시아에서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그 방법은 매우 절묘했다.당시 서양의 식민지 정책은 서로 유럽 간의 전쟁이 되지 않도록 거리를 두면서 침략을 해왔다 .
영국은 인도에서 미얀마,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제도, 프랑스는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동남부다.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를 깔아 아시아 북동부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다.
태국은 아시아 서부의 영국 세력과 동부의 프랑스 세력 사이에 낀 나라가 되어 완충지대로 살아남은 것이다 .
태국은 그 입지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영국 프랑스 측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완충지대로서 평등하게, 나아가 양국에 이익이 되는 중간외교를 능숙하게 펼쳤다.
태국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면 당연하지만 어느 한 나라가 먼저 침공해 식민지가 됐을 것이다.완충지대로서의 메리트성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이를 할 수 있었을까.고송도 민비도 일본에 가까워졌다면 청나라에 흐느끼고 눈을 뗀 틈을 타 러시아에 접근해 무려 고종은 러시아로 망명까지 가는 형국.청일전쟁의 트리거가 된 것은 바로 한반도인 .
러시아는 가오송을 거쳐 한반도의 이권을 속속 챙겼다.드디어 러시아에 잡아먹힐 것을 깨달은 결과 황급히 일본식민지파가 이기고 한일 병합 조약이 맺어지게 되었다.
일본에 위협을 받아 병합 조약을 맺었다고 하는데, 러시아로부터 위협을 받은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태국 외에 아시아에서 독립을 지킨 것은 일본뿐이다.일제 치하에 들어선 한반도와 대만은 결과적으로 서양의 식민지 정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만주국은 독립상태이긴 했지만 일본의 괴뢰국가라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제외한다.
어쨌든 그 시대에 유색인종이 독립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태국처럼 세계 정세를 제대로 이해하고 지정학적 조건을 교묘히 이용하는 희귀한 경우나 혹은 유색인종으로 일어나 백인과 싸운 일본의 경우다.호랑이 앞에서 자고만 있다면 먹을 수 있을 뿐이야.그런 시대겠지.
부탄 국왕의 후쿠시마 방문 동북 대지진 후, 2011년 11월에 부탄 국왕 부부는 후쿠시마현의 초등학교를 방문했다.2011년 10월에 결혼한 다음 달이 된다.문재인은 2021년 7월 공간 선량계를 이용해 일본 식재료 검사를 열심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