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폐하 방중은 대환영으로 맞이했다. 한국 방문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2022-02-20
카테고리: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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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의 중국 방문
1978년 일본을 방문한 덩샤오핑 전 총서기는 중화인민공화국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천황을 알현했다.이후 천황의 방중은 중국 공산당의 비원이었다.
쇼와 천황의 승하로 페레스트로이카에서 냉전 종식의 흐름 속에서 천안문 사건이 발생한다.중국이 세계적으로 고립되고 국제적 비난을 받는 가운데 1992년 결행된 천황의 방중이었다.
수행한 와타나베 미치오 외무대신은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가면 계란 등을 던지는 사람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자오케이정 상하이 부시장에게 묻자 조 내정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대로 연도는 많은 행렬을 이루었고 천황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차량 행렬은 행진했다.
- 상황폐하께서 재위 중에 방문하신 나라
- 1991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 1992년 중국
- 1993년 벨기에 이탈리아 독일 바티칸
- 1994년 미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 1997년 브라질, 아르헨티나, 룩셈부르크, 미국
- 1998년 영국, 덴마크, 폴란드
- 2000년 네덜란드, 스웨덴 스위스 핀란드
- 2002년 폴란드, 헝가리, 체코, 오스트리아
- 2005년 노르웨이, 아일랜드, 사이판 섬
- 2006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태국
- 2007년 스웨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영국
- 2009년 캐나다 하와이
- 2012년 영국
- 2013년 인도
- 2015년 팔라우
- 2016년 필리핀
- 2017년 베트남, 태국
국가 간 국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천황을 거느린 일본으로서 진정한 국교가 무엇인가 생각할 때 천황의 방문은 우호관계의 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중일관계와 한일관계
한국에 대한 천황의 방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겠죠.중국과는 치열한 전쟁을 벌여 양측에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현재도 현안이 많지만 적어도 양국은 오랜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양측의 노력으로 문제를 극복하고 조금씩 나아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허구 위에 구축된 한일관계
과연 한일관계는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까.거짓 역사라는 허구 위에 성립하는 한일 우호관계는 문재인의 등장으로 여리여리하게 무너졌다.그가 없어지면서 반일 기운이 떨어졌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느 시간 위로 돌아가야 할까.
POINT중국의 대일감정도 일진일퇴처럼 보이지만 중국과 한국을 비교했을 때 전혀 양국이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