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조 히데키의 무덤은 아이치현 미가네에 있다 - 중국·한국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반대는 무지에서 오는 문화간섭
2022-06-25
카테고리:일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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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치현 미가네에 잠들어 있는 도조 히데키
게재한 사진은 아이치 현 니시오 시 미가네 산에 있는 순국칠사묘다.도쿄 재판에 의해 사형을 집행받은 7명의 군인·정치인을 모시고 있다.
도조 히데키, 도비하라 겐지, 이타가키 세이지로, 기무라 겐타로, 마쓰이 이시네, 무토 아키라, 히로타 히로키 등이 모셔져 있다.이들 7명의 유골은 이 묘소 밑에 안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즉 도조 히데키 등의 무덤은 이곳에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한국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렇다면 중국이나 한국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이들은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이 모셔져 있기 때문에 총리대신은 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독일 총리가 히틀러의 성묘를 가겠느냐고 목청껏 외치는 것이다.
모든 무덤은 다른 곳에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무덤은 다른 곳에 있다.신사는 신사이다.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져 있는 영령은 246만 6천여 기둥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들의 무덤은 각각 그들의 지역 내지 가족의 손에 의해 건립되어 있을 것이다.
#gren #일본 총리대신이 아이치현에 있는 순국칠사묘를 참배하러 갔을까 #/gren #.
신사는 무덤이 아니다
신사에는 신좌가 있을 뿐 신이 나와 앉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신사는 무덤이 아닌 것이다.신좌를 나누는 것은 본래 할 수 없다.만약 나눈다면 그것은 분사이다.
아울러 읽고 싶다
역사에서 지워진 대동아전쟁과 팔굉일우의 정신 일본은 단지 침략했을 뿐인가?
역사에서 지워진 대동아전쟁
팔코이치우와는 세계평화의 정신
소멸한 팔코이치우
유대인을 구한 일본인
민족차별이 당연했던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전쟁, 대동아전쟁, 태평양전쟁이 있다.GHQ는 대동아전쟁이라는 말이나 팔굉일우라는 말을 공적으로 사용금지했다.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의 침공, 태평양전쟁은 일본과 미국의 전쟁이며 아시아 속에서 벌어진 일은 빠져버린 것이다.그리고 중일전쟁, 만주사변, 그리고 있지도 않았던 한반도 노예화라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팔코일우란 대동아전쟁에서 일본이 내세운 정신으로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이라는 의미에서는 현재의 가치관에서 벗어나는 것은 있지만 본질은 세계가 민족의 차별 없이 서로 존중하는 세계를 만든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서양식민지에 대치한 대동아의 이념이었다.GHQ는 이 말들과 그 이념 아래에 있는 진실을 역사적으로 말소했다.그 의도는 분명하며 일본의 전쟁은 단순한 침략전쟁이며 미국이 이를 막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부터다.
인도네시아 개방을 위해 싸운 이마무라 히토시는 강압정책론에 대해 분명히 팔코일우의 정신에 어긋난다며 거절하고 유화적 정책을 바꾸지 않았다.
나치 박해로부터 도망쳐 온 유대인을 구제한 히구치 케이이치로도 하치코 이치로의 정신을 전제로 책무를 맡았다.한반도, 대만에서의 동화정책은 같은 국가가 됨으로써 구별 없이 사람으로 취급한다는 바로 팔굉일우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민족자결권 등의 관점에서 팔홍일우의 정신이 현대에 있어서 옳으냐 하면 무리가 있겠지만, 당시 세계는 민족차별로 가득 차 있고, 이를 전제로 세계경제가 구축되어 지배적 민족과 피지배적 민족으로 구분되어 가던 시대였다.
전쟁에 좋은 전쟁은 없지만 당시 일본은 단지 약탈을 위해 아시아를 침공한 것은 아니다.역사에서 삭제된 이유를 생각한다.
야스쿠니 신사를 묘지로 생각하고 있다
중한은 전범을 따로 야스쿠니 신사를 나누라고 요구하지만 이 역시 무덤의 사고방식일 것이다.영령의 유골은 야스쿠니 신사 어디에도 묻히지 않았다.집합묘지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무덤을 파헤치는 나라 한국
한국에서는 얼마 전에도 한국전쟁 영웅으로 한국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는 인물이 #ylow #옛 일본군에 종군했다는 이유로 무려 무덤을 파헤치고 있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이상하기 짝이 없는 문화를 가진 나라인 것이다.원래 신사는 무덤이 아닌 것 이전에 무덤에 대한 인식도 그 정도인 것이다.
일본중에 야스쿠니 신사를
결론을 말하자면 야스쿠니 신사를 분사하면 야스쿠니 신사가 2개가 되고, 10개로 분사하면 야스쿠니 신사가 10개사가 될 뿐이다.일본 전역에 야스쿠니 신사를 둔다는 것도 좋은 생각일 수 있다.장난을 치는 무리들을 일본으로부터 멀리하는 마귀신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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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일본의 문화재 등록을 매번 방해하는 한국 - 우리나라 기원설은 문화의 의미를 모르는 문화사막이 원인
일본의 문화재 등록을 매번 방해하는 한국
가라테는 중국에서 전래된 가라테가 기원
캘리포니아롤은 미국의 초밥
최강 주짓수 일가의 그레이시 일족
태국인을 격분시키는 한국
문화의 의미를 모르는 한국
일본의 일본 신문은 2014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이때 문제가 생겼다.종이 제조법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으니 한국 것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을 도둑국가라고 떠들며 문화등록 방해활동을 벌인 것이다 .
일본 종이의 기원은 중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일본 종이의 제조법과 품질에 대해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한 것이다.당연한 얘기지만 유네스코는 국제 상식에 따라 일본의 화지를 등록했다.
가라테는 일본의 무술이다.중국에서 오키나와로, 가라테로서 중국 무술이 전달되어 일본에서 독자적인 진화를 하여 가라테의 형태가 되었다.많은 일본인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다.반대로 가라테는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중국은 중국 무술의 발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초밥 중에 캘리포니아 롤이라는 게 있어.아보카도와 마요네즈 등을 사용한 마키초밥이다.저것을 초밥이라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적을 것이다 .설령 캘리포니아롤이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한다고 해도 불평하는 일본인은 없을 것이다.오히려 응원하겠지.
한국은 일본문화가 한국발래라고 호소합니다.이 밖에도 사무라이, 게이샤, 다도, 유도 등도 한국이 발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유술은 그레이시 가문이 내세우는 주짓수로 일본의 주짓수를 배워 발전시켰다.그러나 브라질 유술을 일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을 본 적이 없다.저것은 그레이시 가문의 것이다.
한국은 태국의 무에타이도 한국 기원이라고 주장해 태국인들을 격분시켰다.태국인은 역사상 중국 남부에 살았던 민족으로 중국 무술, 인도 무술의 원류를 상상한다(구체적인 기록은 없다).그러나 무에타이는 중국 무술도 인도 무술도 아니다.무에타이는 태국의 격투기이자 태국의 국기이다.
문화가 발전함에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을 하고, 발전시켜 그 나라의 문화로 정착시켰는지에 대한 상상력이 최소한 필요하다.
이것은 문화와 전통에 대한 이해와 경의의 문제이다.오히려 이러한 노력이나 경험이 없는 때문에 한국은 쉽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자국 기원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치의 기원이 중국의 아와채라는 중국의 주장에 대해 한국인들이 격분하여 논쟁이 벌어졌을 때 문화적 콤플렉스의 표현이라고 중국으로부터 조롱을 받았습니다.
영전 이름의 유래는 뭐야?황기의 개념을 없애고 학교 교육에서 배제된 것.
영전은 세계 최고의 전투기
황기 2600년에 채용된 영전
황기라는 개념은 어디로 사라졌다
일본의 황기라는 개념
잃어버린 황기
황기는 일본의 역사 그 자체
옛 일본군이 자랑했던 세계 최고의 전투기, 그것이 바로 영전이다.영식 전투기(永式戰戰戰機, 영전)는 쇼와 15년(1940년)에 일본해군에 채용된 함상 전투기이다.기체는 세계 최경량을 자랑하며 무엇보다 조종사의 숙련도에 대해서도 진주만 공격이 이뤄졌을 때 최고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전의 영은 황기 2600년의 아래 두 자릿수인 00에서 따온 것이다.놀라울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학교 역사 수업에서 가미카제 특공대나 영전 이야기는 배우지만 황기라는 개념을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어떨까.
사실 황기라는 개념조차 일본인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그렇다면 영전의 영의 의미도 있을 리 없다.너무 신기하다.황기란 초대 천황인 진무 천황이 즉위한 해부터 기산하는 일본의 독자적인 달력이다.
올해는 황기 2682년이니 영식전투기가 채용된 지 82년이면 단순 명쾌하다.그러면 천황을 모신 일본이 그 국체를 보여준 후 2682년이다.이는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나라로 여겨지는 그 연수를 보여준다.
왜 황기라는 개념을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는지 마하신기하다.조사해보면 진무천황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2월 11일(황기 설날)이 정말 일본 건국일인지 입증할 수 없다거나 과학적 근거가 없다거나
그리고 GHQ의 의향도 있어 건국기념일 자체가 없어진 바 있는 것 같다.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 서양력은 도대체 무엇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일본이라는 국가. 그 역사와 문화는 계속 계승된 국가라는 프레임 안에서 형성되어 왔다.긴 일본 역사나 문화의 시간적 척도로서 가장 단적인 것은 황기라고도 할 수 있다.
원호라는 개념은 남아 있으면서도 황기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역사교과서나 모든 서기표기를 황기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적어도 일본의 역사가 얼마나 길고 그 속에서 일본 아이들은 태어났는지를 인식하고 그것들을 계승하는 역할을 다소나마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기 위해서도 황기의 부활은 중요한 것이다.
음영 예찬, 일양 절충의 일본 대륙은 문자를 폐지하고 과거를 파괴했다 완전히 다른 역사에 대한 접근
일본문화와 음영예찬
어두껍고 아름다운 일본 칠기
일본인이 목표로 한 것은 양립과 조화
대륙에서 이루어진 것은 과거의 부정
한국에서는 한자를 폐지
간체자 도입으로 과거를 읽을 수 없는
과거 문서를 읽지 못하면 역사도 읽을 수 없다
고문,한문을 배우는 일본
과거를 소각하고 역사를 만드는 대륙
일본의 황족은 계속 존속하고 있다
일본 문화에 대해 생각할 때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영 예찬이 떠오를 때가 있다.중학교 시절 국어 수업에 뭔가 어려운 문장이 등장해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기억한다.그 문화가 생겨난 배경을 알아야 일본 문화의 우수성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의 옻칠 기술에 대해 검은색을 기반으로 한 일본의 칠기는 전기가 없는 시대에 촛불 등 어두컴컴한 식탁에서 떠오르는 그릇이 아름답게 비치도록 추구한 것이 일본의 옻칠 기술이라는 것이 설명되어 있었다.
전구의 빛 속에서는 검은 그릇은 맞지 않는 것일까, 흰 접시나 유리컵이 귀하게 여겨지게 되었다.그러나 촛불의 어두컴컴한 어둠 속에서 일본 그릇으로 식사를 하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일본에서는 일양 절충이라는 말이 있다.메이지, 다이쇼 시대에 서양 문화가 대량으로 유입되지만, 일본인은 일본 전통 문화와의 양립과 조화를 이루었다.양립과 조화를 통한 계승이다.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裕吉)는 서양 문화는 유행병과 같다고 표현했다.거기에 저항해도 그 감염을 막을 수 없으니, 그것들을 받아들인 후의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일본이 양립과 조화를 요구한 것은 그릇이나 문화풍습뿐만 아니라 이를 전하는 문자나 문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대륙에서 벌어진 일은 양상이 다른 것 같다.중국의 문화대혁명이란 무엇일까.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도입하면서 자신이 자랑해온 역사적 중국문화를 파괴하는 운동이었고, 실제로 문화재를 파괴하고 지켜온 사람들을 참살했다.
한국에서는 어떨까.전후 독립국이 된 후 1948년 한글전용법에 의해 공문을 한글로 적는 것이 결정되었고, 1970년 한자 폐지 선언이 이루어지면서 교과서에서 차례차례 한자가 사라졌다.한글을 민족의 문자로 삼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한자를 폐지함으로써 과거 문서를 읽을 수 없게 된 것이다.문자를 폐지한다고 하는 대처는 일본인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 도입된 간체자(간소화 기호화한 현재의 한자)에 대해서도 같은 의미가 있다.번체자(옛 한자)를 간체자로 대체함으로써 이후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과거에 번체자로 쓰여진 문서를 읽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 번체자를 사용하는 곳은 일본 대만 홍콩이다.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받고 싶었던 것이 원인이다.
특히 한국에서 역사인식이 너무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것은 과거 문서에 대한 접근이 부족한 것도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그 이전의 문서들은 한자로 쓰여져 있어 이들 일체를 현대 한국인들은 읽을 수 없다.아마 읽으려는 생각조차 없을 것이다.역사는 이미 문서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 얼마나 아시아인으로서 개탄스럽고 한심한 일인가.국민의식이나 문화란 그런 방식으로 조성되는 것일까.어느 것도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은 과거 문자를 계속 활용해 만바가나로 불린 히라가나로 소리를 보강해 일본어 기술을 발명했다.
과거의 문장도 표현이나 형용사가 다르기도 하니 일본의 교육에서는 고문이나 한문을 배워 과거의 문서를 읽으려고 한다.과거에 살았던 일본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풍습을 접하기 위해서다.
원래 대륙의 역사란 전쟁에 의해 왕이 왕을 살해하고 왕조 교체가 이루어진다.이때에는 과거 왕조가 쌓은 많은 것들이 파괴되고 나쁜 왕을 쓰러뜨리고 좋은 왕이 군림했다는 구도를 만들어낸다.이때 '분서'라는 것이 행해진다.전 왕조 때의 문서를 불태워 파기해 버리는 것이다.역사의 파괴와 조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 왕조는 바로 천황가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어느 시대에도 일본 왕족들은 지켜지고 유지되어 왔다.일본인들은 어떤 사회 변화에서도 천황가를 폐지하자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그래서 연간 천황폐하를 거느린 일본이 존재해 왔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즉 대륙에 있어서의 과거에의 어프로치와, 일본의 과거에의 어프로치는 근저의 부분부터 전혀 다르다.
나라를 낳는다의 일본 신화에서 보는 일본의 건국 - 국경이나 민족의 개념이 아닌 황통의 신하가 되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는 신화에서는 이자나기(伊邪那岐)와 이자나미(伊邪那美)가 창끝에서 떨어진 물방울로 섬을 만들지 가장 먼저 태어난 곳이 아와지섬으로 여겨진다.경경기존(瓊瓊杵尊)의 천손강림 장소는 가고시마와 미야자키에 걸쳐 있는 다카치호봉이라 하며, 일본이 건국되는 전설은 서일본에서 시작된다.
갈대밭 중국 평정에서는 황통에 끝까지 저항한 아메노카
가세오(天津甕星)는 후츠누시(経津主神)와 타케미카즈치(建御雷神)에게 지금의 보소반도의 가장자리까지 내몰렸다고 하며, 이바라키현에는 타케미카즈치를 모시는 가시마신궁이 있으며, 타케미카즈치는 스모의 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힘을 자랑하는 후츠누시와 타케미카즈치도 아메노카가세오를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에(天羽槌雄神)는 타케하즈치라는 직물의 신이 있다.
그러한 경위가 있어 지바현이나 이바라키현에는 황통에 대한 저항세력이었던 아메노카가세오를 모시는 호시진 신사도 다수 산재해 있다.현재의 황통에의 저항 세력으로서 일본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는 치바현 요츠카이도시이거나 나리타 투쟁에서는 좌익이 전국으로부터 이주해 오거나 입민의 유력자가 치바현인 것은 아이러니한 것이다.
이 전제로 현재의 동북 지방이나 홋카이도는 포함되지 않아 에이지(蝦イ地)라고 불린다.이후 하이 평정이 이루어져 일본에 편입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황통의 신하가 될 것인가의 여부가 일본인지의 기준이며, 현재로서 말하는 국제법상 국경이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는 조몬 시대부터 수많은 민족이 도래하여 거주하였다고 하며, 위지왜인전에는 왜국은 구사한국과 접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후한서에서도 왜국은 육지로 이어져 반도의 나라와 접하였다고 생각되는 기술이 있다.왜국은 반도의 일부까지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다.조선 삼국지 안에 실제로는 왜국도 관여했다는 설도 있고 백제와 친분을 쌓아 백촌강 전투에 참전했지만 패해 백제민을 일본은 난민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인이라는 전제는 황통의 신하가 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역사적 기초였다.그 전제를 바탕으로 일본 헌법의 제1조가 있다면 천황이란 일본이라는 나라가 태어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상징이다.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지속된 나라는 일본이다.
여담이지만 오키나와의 다마키 데니 지사라는 것은 일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고, 일본의 역사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황통에 복종할 생각도, 일본 헌법에 복종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전설의 드라마 「오신」은 해외에서도 인기 68개 국가나 지역에서 방송되었다 | 이집트 시청률 80%, 이란에
세계 68개 국가 및 지역에서 방영된 전설의 드라마
싱가포르, 이집트에서 시청률 80%를 기록
이란에서는 90%의 시청률 이상의 여성으로 선택된다
중국에서도 방송, 하지만 한국은...
오신은 지대한 공적을 올린 Cool Japan
'오신'은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 각국에서 히트를 쳤고, 몇 나라나 지역에서 방영되었는가 하면 놀란다.68의 나라나 지역에서 방송 되었다.
「오신」은 NHK 드라마로 1983년부터 1년간 방영된 히트 작품입니다.어린 소녀가 하인으로 생가를 나온 후 여러 가지 고생을 거듭하며 메이지, 다이쇼, 쇼와를 살며 성공해 나가는 이야기로 당시 일본의 가난한 농촌 생활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입니다.오신은 하시다 스가코씨가 각본을 맡아, 그가 세상에 알려진 대표작이 됩니다.
일본에서는 TV 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인 평균 시청률 52.6%, 최고 시청률 62.9%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기록하고 있다.하시다 스가코씨는 「건너가는 세상은 귀신뿐」외, NHK 연속 텔레비전 소설, 대하 드라마 등 셀 수 없을 정도의 작품을 다루고 있습니다.
해외 첫 방송은 싱가포르에서 80%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이집트에서도 80%의 시청률 를 기록했다.드라마가 시작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방송 중 정전이 발생하여 방송이 중단되었다.드라마를 못 보면 화가 난 이집트인들이 방송국으로 몰려들어 폭동이 일어난다.그 외 가난한 엄마에게 먹여 달라고 음식이 방송국에 대량으로 보내지고 있다.
이란에서는 90%의 시청률 를 기록.이상적인 여성이 누구냐는 라디오 방송에서의 질문에, 최고 지도자인 호메이니의 딸을 제쳐두고 엄마가 선택되어 버린다.이것이 큰 문제가 되어, 라디오국의 책임자 4명이 해고되는 사건으로 발전.그 외, 다음 나라의 리더는 누가 이상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무슬림도 아닌 엄마가 당당 4위에 랭크 되어 버렸다.
중국에서 오신은 아신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며 방영 시 베이징에서의 시청률은 75.9% 를 기록했다.중국은 과거 적국으로 전쟁을 치렀던 상대였지만 오심을 보고 눈물이 눈앞을 뒤덮었다.일본의 이미지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많다.중국에서는 2007년에 재방송이 실시되고 있다.
아시다시피 한국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방송이 안 되고 있다.1998년 한일 공동선언으로 일본 드라마나 문화가 한국 내에서 해금되었는데, 왠지 오신의 방송은 하지 않는 것이다.일본의 이미지를 바꿔버리는 가장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현재는 Cool Japan이라는 틀에서 애니메이션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일본 콘텐츠가 해외에 수출되고 있지만, 당시 1980년대에 연속 TV소설로서 총 297화나 되는 장편이 세계 68개 국가나 지역에서 방송되었다는 것은 현재 생각해도 위대한 공적이라 할 수 있다.
종전 후 일본의 이미지는 해외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사무라이나 게이샤, 닌자 정도의 인식밖에 없었던 가운데, 일본 문화나 일본인의 사고방식, 오신이 살았던 시대의 생활등이 세계에 소개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