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전 이름의 유래는 뭐야?황기의 개념을 없애고 학교 교육에서 배제된 것.
2022-06-30
카테고리:일본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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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전은 세계 최고의 전투기
옛 일본군이 자랑했던 세계 최고의 전투기, 그것이 바로 영전이다.영식 전투기(永式戰戰戰機, 영전)는 쇼와 15년(1940년)에 일본해군에 채용된 함상 전투기이다.기체는 세계 최경량을 자랑하며 무엇보다 조종사의 숙련도에 대해서도 진주만 공격이 이뤄졌을 때 최고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기 2600년에 채용된 영전
영전의 영은 황기 2600년의 아래 두 자릿수인 00에서 따온 것이다.놀라울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학교 역사 수업에서 가미카제 특공대나 영전 이야기는 배우지만 황기라는 개념을 들어본 기억이 없는데 어떨까.
황기라는 개념은 어디로 사라졌다
사실 황기라는 개념조차 일본인들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그렇다면 영전의 영의 의미도 있을 리 없다.너무 신기하다.황기란 초대 천황인 진무 천황이 즉위한 해부터 기산하는 일본의 독자적인 달력이다.
아울러 읽고 싶다
남성계 계승은 정당한 천황가를 나타내는 유일한 것으로 만세일계 원칙
일본 황실의 남계 계승은 남녀차별?
여성천황과 여계천황은 전혀 다르다
황통을 지키는 것의 의미란
일본은 황통이 지켜졌기 때문에 분열되지 않았다
일본 황실은 남계의 계보로 계승되어 왔다.천황황후 두 폐하 사이에 남아가 태어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지만 좌파를 중심으로 한 의견은 남녀차별이라고 비난하고 있다.즉 천황 폐하의 딸인 아이코 내친왕 전하를 천황으로 삼으라는 것이다.
여성 천황과 여계 천황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황위 계승이라는 것은 천황의 아버지를 따라가면 진무천황에 대한 계보가 이어진다는 것이다.여계천황을 인정하면 천황의 어머니를 따라가도 진무천황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천황가는 현재까지 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남계의 족보를 이어왔다.여계 천황을 인정한다는 생각은 이 년 전통을 끊으라는 폭론인 것이다.현재 아키시노미야 부부에게는 자녀가 있으므로 히사히토 친왕 전하에게 계승되는 것이 올바른 계승 형태가 된다.
남녀평등이라는 사고방식과 문화와 전통, 황실의 계보를 지키는 사고방식을 혼동한다면 이상한 얘기가 된다.남녀차별이라면 황실 여성은 일반 남성과 결혼하면 황실을 떠나야 한다.반대로 말하면 일반 남성은 황실 여성과 결혼해도 황실에 들어갈 수 없다.이것은 남녀차별이 될 것이다.그러나 이것은 집안 문제인 것이다.그리고 천황가는 일본 집안의 상징이기도 하다.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그 집들의 길이 있다.천황가는 그것을 년이나 계승해 온 것이다.그거 변경할래?도대체 왜...
기독교는 복음서가 나뉘며 여러 파가 있으며 천주교, 개신교, 그리스 스타일 등으로 분파하여 대립하고 있다.이슬람교는 4대 알리를 후계자로 인정할지 여부를 놓고 수니파와 시아파로 분열돼 대립하고 있다.
일본에는 계승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계보가 존재한다.이를 지키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남녀평등의 원칙?뭘까.일본은 이 혈통을 지켜나가는 것에 변함이 없다.천황은 일본국을 상징한다고 헌법에 쓰여 있을 것이다.
일본의 황기라는 개념
올해는 황기 2682년이니 영식전투기가 채용된 지 82년이면 단순 명쾌하다.그러면 천황을 모신 일본이 그 국체를 보여준 후 2682년이다.이는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나라로 여겨지는 그 연수를 보여준다.
잃어버린 황기
왜 황기라는 개념을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는지 마하신기하다.조사해보면 진무천황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2월 11일(황기 설날)이 정말 일본 건국일인지 입증할 수 없다거나 과학적 근거가 없다거나
그리고 GHQ의 의향도 있어 건국기념일 자체가 없어진 바 있는 것 같다.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 서양력은 도대체 무엇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일본이라는 국가. 그 역사와 문화는 계속 계승된 국가라는 프레임 안에서 형성되어 왔다.긴 일본 역사나 문화의 시간적 척도로서 가장 단적인 것은 황기라고도 할 수 있다.
황기는 일본의 역사 그 자체
원호라는 개념은 남아 있으면서도 황기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역사교과서나 모든 서기표기를 황기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적어도 일본의 역사가 얼마나 길고 그 속에서 일본 아이들은 태어났는지를 인식하고 그것들을 계승하는 역할을 다소나마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기 위해서도 황기의 부활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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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일본은 병합한 상대 왕족을 보호한 쪽 - 일본 신화에도 등장하는 일본 문화.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가 된 순종은 일본 통치 시대기 왕공족으로 창덕궁에 살았다.창덕궁이 화재가 났을 때 불에 탄 낙선재에서 살다가 덕수궁 이사 제의에 천황이 주신 창덕궁이니 움직이지 않겠다며 이완용을 질책했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아이신지료푸이(愛新覚羅溥儀)는 신해혁명 때 퇴위와의 맞바꾸기 약속으로 자금성에 살았습니다.신해혁명은 일본과 손문의 합작이다.일본 관동대지진 때는 자금성 내 보물을 금으로 바꾸고 많은 성금을 요시자와 켄키치에게 맡겼습니다.원소개 사후 조의는 자금성을 추방당하고 일본이 보호하게 되어 만주국 황제에 취임했습니다.청일과는 청일전쟁에서 싸운 일본의 적국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사고방식에 대해 그다지 주목받지 않고 일본이 침략했다, 침략했다고 외치는 소수의 나라가 있다.적어도 이들 나라의 옛 군주에 대해 일본은 정중하게 다루고 보호했다.중국은 스스로 청나라 마지막 황제를 추방하고 있다.
이즈모다이샤는 일본에서도 해외여행객들로부터도 유명한 신사다.이유는 웅장하고 바로 경관은 예술 그 자체다.애초 이즈모 대사는 나라를 내준 대국 주신(大国主神)을 위해 만들어졌다.이것은 일본 신화의 이야기이다.
처음 일본에서는 이사나기(伊邪那岐)의 아들 수사노오(須佐之男命)명이 천계에서 추방당하고 지상으로 내려와 나라를 넓혔다.대국 주신이란 그 자손이 된다.원래 지상을 통치하라는 이사나기의 명령을 받은 것은 아마테라스 대신(天照大神)이었는데, 아마테라스 대신의 손자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지상에 내려오기 위해 사전에 타케미카즈치(建御雷神)를 지상에 파견해 나라를 물려주는 교섭이 이루어진다.
대국 주신의 둘째 아이 타케미 나카타(建御名方神)이 저항하다가 타케미카즈치과의 싸움에 내몰려 시나노의 나라에서 나오지 않으니 이곳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스와의 나라에 진좌하였다.이것은 나가노현의 스와신사이다.결과적으로 대국 주신은 이즈모의 나라에 어전을 만들어 주시면 먼 세계에서 섬기겠다며 자해하였다.그래서 만들어진 곳이 이즈모대사라고 한다.이 신화 속에서도 깨진 상대에 대해 현대에도 웅장하게 존재하는 이즈모 대사를 건설했다.이것은 일본의 문화임에는 틀림없다.
해돋이를 보는 나라는 의외로 적다 - 태양신앙 아마테라스 다이진과 결합된 일본의 해돋이.
해돋이를 보는 습관이 있는 나라는 어느 정도 되나 싶어 알아보니 몽골과 한국, 러시아와 미국, 캐나다 등이 꼽히고 있어 생각보다 적었다.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은 북극권에서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 해서 이른바 이누이트 문화라고 한다.이누이트는 몽골로이드라고 알려져 있으니 관련성이 있다.
한국에 왜 그 습관이 퍼졌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일본의 민족적 뿌리는 몽고로이드나 코카사이드라는 설이 유력하고 유전자학적으로는 바이칼호설을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바이칼 호수는 현재는 러시아이기는 하지만 당시 똑같이 몽골로이드가 살았던 것으로 생각되며 동쪽으로 이동한 것이 일본인이고 서쪽으로 이동한 것이 키르기스스탄인이라고 키르기스스탄의 전언에 남아 있다고 한다.키르기스스탄인이 일본인을 쏙 빼닮은 것은 일본인이라도 놀랄 정도다.
일본의 경우 특히 일본 전통의 신앙과도 결부되어 해돋이는 해돋이라고도 불리며 고마운 것으로 여겨진다.일본의 국기는 일장기이며 태양이다.그리고 욱일기 역시 태양을 데포르메하여 존재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이것은 무엇에서 유래되었는가 하면 자연신앙의 태양신앙. 즉 아마테라스 대신이다.황통의 기점으로 일컬어지는 아마테라스 대신은 이세 신궁에 모셔지고 각지에도 아마테라스 대신을 모신 신사는 많이 존재한다.현재 남계 계승에 대해 논의되고 있지만, 남계 계승이란 부형을 따지면 초대 천황인 진무 천황에 도달하고, 사실 신화 속에서는 아마테라스 대신에 도달하게 되어 있다.이것이 정당한 황통으로서 유사 이래 일본이 이어져 왔다.
일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국기나 천황(황통)에 대해 일본인들은 이러한 경위를 전혀 배우지 않고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부르는 사람이 많은 것은 역시 교육의 문제이다.왜 초등교육에서 이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가.아마이와도 신화를 다루면서 태양신 아마테라스 대신으로부터 황통이 기록되었고, 일본 국기에는 태양이 그려져 있다.그런 심플한 것이다.
헌법상 종교교육 금지란 특정 종교를 포교하거나 배제하거나 어느 종교에 귀의할 것을 권유하거나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을 뿐 연말연시 습관이나 문화의 설명으로 크리스마스, 제야의 종, 해돋이처럼 설명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적어도 일본인의 대부분은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섣달 그믐날에는 제야의 종을 듣고 설날에는 신사에 참배하러 가지 않을까.
나라를 낳는다의 일본 신화에서 보는 일본의 건국 - 국경이나 민족의 개념이 아닌 황통의 신하가 되는 것이
일본이라는 나라는 신화에서는 이자나기(伊邪那岐)와 이자나미(伊邪那美)가 창끝에서 떨어진 물방울로 섬을 만들지 가장 먼저 태어난 곳이 아와지섬으로 여겨진다.경경기존(瓊瓊杵尊)의 천손강림 장소는 가고시마와 미야자키에 걸쳐 있는 다카치호봉이라 하며, 일본이 건국되는 전설은 서일본에서 시작된다.
갈대밭 중국 평정에서는 황통에 끝까지 저항한 아메노카
가세오(天津甕星)는 후츠누시(経津主神)와 타케미카즈치(建御雷神)에게 지금의 보소반도의 가장자리까지 내몰렸다고 하며, 이바라키현에는 타케미카즈치를 모시는 가시마신궁이 있으며, 타케미카즈치는 스모의 신으로도 알려져 있다. 힘을 자랑하는 후츠누시와 타케미카즈치도 아메노카가세오를 억제하지 못하고 결국에(天羽槌雄神)는 타케하즈치라는 직물의 신이 있다.
그러한 경위가 있어 지바현이나 이바라키현에는 황통에 대한 저항세력이었던 아메노카가세오를 모시는 호시진 신사도 다수 산재해 있다.현재의 황통에의 저항 세력으로서 일본 공산당의 시이 가즈오는 치바현 요츠카이도시이거나 나리타 투쟁에서는 좌익이 전국으로부터 이주해 오거나 입민의 유력자가 치바현인 것은 아이러니한 것이다.
이 전제로 현재의 동북 지방이나 홋카이도는 포함되지 않아 에이지(蝦イ地)라고 불린다.이후 하이 평정이 이루어져 일본에 편입된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황통의 신하가 될 것인가의 여부가 일본인지의 기준이며, 현재로서 말하는 국제법상 국경이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에는 조몬 시대부터 수많은 민족이 도래하여 거주하였다고 하며, 위지왜인전에는 왜국은 구사한국과 접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후한서에서도 왜국은 육지로 이어져 반도의 나라와 접하였다고 생각되는 기술이 있다.왜국은 반도의 일부까지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다.조선 삼국지 안에 실제로는 왜국도 관여했다는 설도 있고 백제와 친분을 쌓아 백촌강 전투에 참전했지만 패해 백제민을 일본은 난민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본인이라는 전제는 황통의 신하가 될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역사적 기초였다.그 전제를 바탕으로 일본 헌법의 제1조가 있다면 천황이란 일본이라는 나라가 태어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상징이다.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지속된 나라는 일본이다.
여담이지만 오키나와의 다마키 데니 지사라는 것은 일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고, 일본의 역사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아 황통에 복종할 생각도, 일본 헌법에 복종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간무천황의 어머니는 백제왕의 후손인 다카노 아라카사 - 황실은 남계 계승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헤이안 시대 간무 천황의 어머니는 백제계 도래인 다카노 신카사라는 인물이다.일본과 백제의 관계는 알 수 없는 것도 많지만 추측의 영역으로 훨씬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위지왜인전에는왜국(일본)은구사한국과접한다고기록되어있어현재의일본열도와한반도남단에일본인이살고있었던것이다.
그 이전에 일본식 고분.전방후원분은 한반도 백제지역에서 발견된다.일본의 이와슈쿠 유적에서 발굴되는 간석기의 전파를 더듬어 보면 한반도까지 퍼진 흔적을 시계열로 알 수 있을 것 같다.663년 백촌강 전투로 백제는 멸망하고 한반도에서 철수한다.이때 많은 백제인들이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아들인 선광(善光)을 시조로 하고, 일본의 씨족으로 백제왕씨(百濟王氏)라는 씨성이 부여되었다.그 후손이 간무 천황의 어머니라는 것이다.내 기억으로는 백제가 한반도에 있던 시절에 천황가 여인이 백제왕과 결혼한 기억이었는데 찾아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일반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는 풍습은 전후부터이며, 그때까지는 어떠한 혈연관계가 없으면 천황의 왕비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역시 그 이전에 친척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이 설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현재의 상황폐하가 재위 중인 생일에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임을 언급하고 있어 틀림이 없을 것이다.이 생일 말씀을 실제로 듣고 있었는데, 상황폐하께서 발언하신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놀랐던 기억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는 천황이 한국인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그 대 1인후를 백제왕의 후손으로 맞아들였을 뿐, 원래 천황가는 남계 계승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거슬러 계보를 따라가지는 않는다.게다가 백제는 한반도에서 멸망했기 때문에 그것을 일본이 보호한 입장이 된다.그리고 그들은 일본인과 동화되어 가는 길을 택했으니 한국인이 아니다.
오사카와 메이지유신 - 후쿠자와 유키치도 다녔던 오사카대학의 뿌리 오가타 홍안의 적숙은 지금도 오사카에 존재
오사카와 막부 말기에 대해 조사해 보니 오가타 홍안이 개설한 난학을 배우는 '적숙'이라는 것이 있었다.오사카 대학의 뿌리인 것 같다.당사 일본은 쇄국을 하고 있었고 네덜란드와는 나가사키에서 통상을 하고 있었으며 학문도 네덜란드로부터 세계의 정보를 얻고 있었다.이것을 난학이라 하였다.오가타 홍암은 일본 근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인기 드라마 '진-인-'에도 등장한다.후쿠자와 유키치도 난학을 배우기 위해 20세 때 이 오사카의 적숙에 입문했다.
게이오기주쿠 대학은 구란학원이 기초가 되는 것 같다.일본에서 학문은 이런 작은 학원이나 서당에서 행해지는 것이었다.현재의 교육제도 속 교사와 학생이라는 입장이 아니라 사제관계로서 농밀했다.그리고 학문은 원류에서 제자로 흘러 나라와 사회를 직접적으로 바꾸어 가는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다.
서울대는 옛 제국대학으로 1924년 경성제국대학으로 출범했다.일본이 근대 학문을 한반도로 가져간 셈인데 내실은 어떨까.즉 거기에 한반도를 풍요롭게 하려는 사제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울대는 한국의 최고 학부로 알고 있는데, 그 대학의 원류와 그 학문의 영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어쨌든 한반도에서의 일제강점기 교육은 현재와 같다.이것이 학문인가 하면 전혀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