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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송은 한일 병합 후에도 당구에 흥하는 생활 - 일본은 한반도를 노예화했다는데?

2022-02-15  카테고리:이씨 조선

순송은 한일 병합 후에도 당구에 흥하는 생활 - 일본은 한반도를 노예화했다는데?

Photo by Matteo Carcassi (licensed under CC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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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후 순송의 컨디션 회복

대한제국 마지막 황제 순송(李坧)은 한일 병합 후 경성부 창덕궁에서 살다가 왕으로 책립되어 이왕으로 칭해졌다.

병합 전에는 심신이 쇠약해져 시종에 의지하지 않으면 보행할 수 없을 정도였으나 이 무렵에는 보행이 가능해지면서 쾌활하게 응대하게 되었다.

테라우치 마사키는 「국사다난의 심통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말하고 있다.

당구나 프랑스 요리에 흥하는 나날

이왕은 매우 신경질적이어서 기상 목욕 취침 시간은 스스로 시계를 보고 제시간에 했다.평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취미인 당구에 흥했고 밤에는 축음기를 듣는 생활을 했다.

또 이태왕이 된 아버지 고종과 마찬가지로 기억력이 뛰어나 알현자의 이름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제국호텔 초대 주방장을 지낸 요시카와 가네요시 부자의 프랑스 요리를 좋아해 거의 매일 먹고 있었다.

천황을 경애한 순송

1917년 6월에는 일본을 방문, 10년 전 방한한 다이쇼 천황을 알현하는 형식으로 재회했다.

11월에는 창덕궁 대부분이 소손되는 화재가 발생하여 불에 탄 낙선재라는 건물로 옮겼으나 비좁았다.이완용은 이태왕이 사는 덕수궁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검토됐으나 이를 들은 이완용은 천황이 내린 창덕궁이니 움직이지 않겠다며 이완용을 질책했고 이후 2년간 창덕궁 중수가 끝날 때까지 낙선재에서 살았다.



POINT

한반도는 일본에 노예화되었을까요?통상 정복당한 쪽의 왕족은 처형되거나 추방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