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킹 참여 중이에요클릭 응원 부탁드립니다.
방위 라인의 남하 냉전 붕괴 이후 아태지역에서의 방어선이 바뀌었음을 인식하고 있다.냉전의 붕괴로 한반도의 남북 대립은 미국에 중요도가 떨어졌다.주한미군의 이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중국으로 다시 설정하고 미 7함대와의 상호 협력과 연계를 강화하는 것이다.박근혜시대의 GSOMIA, THAAD, 위안부 합의는 정답이었다.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이상 한반도 문제는 양자간의 문제로 집약돼 갈 뿐이다.아시아 방위선은 크게 남하했다.문재인은 이 뜻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정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
미군 철수 등을 시사하는 발언과 중국과의 3불 약속 등을 맺으며 북한과는 척박한 유화정책에 열중하고 있다.
일본 열도를 본거지로 하고 일본과 미국을 주축으로 한 QUAD가 시동을 걸어 오랜 시간에 걸쳐 중국 경제권을 봉하는 연계가 이뤄진다.한일관계의 실질적 파탄상태와 한국의 친중노선으로 인해 한국이 QUAD에 참여하는 스토리는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군수산업 부활을 착착 추진하고 있다.차세대 전투기 개발, 무인 스텔스 등.이제 일본은 100여 년 전 이야기로 교착상태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세계의 흐름을 예민하게 파악해 그 역할을 해 나갈 것이다.
전후 배상 노무현 대통령은 한일 청구권 협정에 개인 보상이 포함될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일본은 노인들이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시간벌기라고 하지만 반대겠지.그동안 한국 정부는 국민에 대한 전후 보상을 여러 번 했잖아요.지금의 정부가 도망치고 있을 뿐 일본에 화살을 돌리고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은 문재인이다.
2005년 당시 위안부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일본은 정부 주도의 강제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고, 2015년 위안부 합의에 따라 포괄적으로 끝났음은 물론이다.
-----
2004년 2월 서울행정법원이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문서 57권 중 5권을 공개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일본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단체가 2002년 9월 정부를 상대로 한 한일협정의 구체적인 내용 확인을 요구하면서 시작된 재판이었다.
이로써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과 70년대 보상 이후 일시적으로 수면 아래 취했던 일본의 배상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일종의 2라운드다.
당시 정부는 양국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근거로 항소했다.그러나 2004년 8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실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협의해 문서 공개를 검토하라고 전격 지시하면서 항소를 포기하면서 공개가 확정됐다.
2005년 1월 청구권협정 관련 문건이 공개되자 일본으로부터 받은 보상금에 비해 1975년 정부가 지급한 피해자 보상액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여론이 비등했다.박정희 정부는 19751977년 보수 당시 3억달러 중 90%를 경제개발 등에 투입했고 10%만이 보상금으로 지급했다.103만명으로 추산되는 강제동원 희생자 중 고작 8,552명만이 이익을 봤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는 이에 대한 후속 조치를 준비했다.당시 노 전 대통령과 이해찬 국무총리는 (1) 법적 보상이 아닌 다른 형태의 지원이 바람직하다(2) 지원 규모는 국민적 타협 협의 과정을 거치는 것(3) 국가는 여유 차원의 보상 지원을 하는 것(4)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 제정 등 4가지 기준을 마련했다.이를 위해 조직된 기구가 민관공동위원회이다.양삼성 법무법인 화우 고문 등 민간위원 10명 이해찬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 11명 등 총 21명으로 구성됐다.
민·관 공동위원회는 2005년 8월 26일 다음과 같은 논의 결과를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1)일본군 위안부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와 사할린 동포, 원폭피해자는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2)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차관 3억달러는 개인재산권(보험 예금 등),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 등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반영된다.
(3)한국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수령한 무상자금의 상당량을 강제동원 피해자 구제에 사용해야 하는 도의적 책임이 있다고 판단된다(한국 정부는 1961년 6차 회담에서 일본에 요구한 총 12억2000만달러 중 강제동원 피해보상에 대해 3억6000만달러를 산정한 것).
(4)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에 대해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등의 계속적인 책임 추궁을 하는 한편, 국제기구를 통해서 계속 제기한다.
유니클로 큰 폭 흑자전환 불매운동 어디로 사라진 옛일은 잊었을까?
한국에서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에프알엘코리아가 2021 회계연도(2020년 9월 1일? 2021년 8월 31일) 실적을 발표했다.
영업이익은 529억원(약 51억엔)로 전년 회계연도 884억원 적자에서 큰 폭의 흑자로 전환했다.기존 점포를 정리해 수익 개선을 꾀하고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온라인 쇼핑 수요가 높아지자 온라인 스토어 판매를 강화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취재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진 이듬해 코로나19가 유행했다.유니클로의 온라인 전환은 전화위복이었다고 지적했다.
나라를 올린 불매운동 속에서도 흑자전환이라니 대단하네요.그 배경에는 코로나로 인한 인터넷 쇼핑의 확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퍼스트 리테일링의 오카자키 켄 CFO가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한국 언론은 크게 분노했고 유니클로에 대한 맹패싱이 과열됐다.
또 한국 UNIQLO CF에서는 13세 여성이 How did you used to dress when you were my age?(내 나이 때는 어떤 옷을 입었어?)라고 묻자 98세 여성은 Oh my god, I can't remember that far back.(그런 옛날 일을 잊었어)라고 발언한 내용이 위안부를 모욕하고 있다며 불매운동에 불을 붙였다.
98세 여성이 13세 때면 바로 일제강점기 때인데 그걸 잊었다니 모욕이라는 터무니없는 이치였다.결과를 보니 오카자키 CFO의 예측은 맞았다.
불매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묻는다면 I can't remember that far back이라고 할까.
오카자키 FCO는 한국인의 뜨겁기 쉽고 식기 쉽다는 국민성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덧붙이자면 자기모순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고액 연봉자였던 위안부 문옥주1992년 문옥주는 위안부시대 2년 반 동안 모은 우편저금 26,145엔 반환 청구소송을 일본에서 벌였으나 1965년 협정에서 해결된 것으로 드러나 패소했다.천엔은 대구에 작은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던 시절로 1945년 1만엔의 가치는 1,900만엔이라면 2년 반 만에 5천만엔 남짓 저축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돈은 버마의 군표 계산이고, 일본 정부는 군표와 엔화 교환을 금지했기 때문에 그럴 가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무리 봐도 엔화로, 게다가 우편저금이며 외화도 군표도 아니다.참고로 당시 군표를 봐도 루피로 표기돼 있고 엔이라는 글자는 어디에도 없다.
일제시대는 노예가 집을 몇 채 바꿀 정도의 시대였나.원래 노예에게는 월급도 축재도 인정되지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