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계부채가 세계 1위라면 가처분소득 부족 - 돈 안쓰면 매너가 나쁠 뿐
2022-06-20
카테고리: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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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정부 부채가 254%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지낸 연세대 국제대학원 함준호 교수가 대회 사전 배포한 발표문에서 한국의 거시레버리지(민간정부부채) 수준이 GDP 대비 254%까지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가계채무가 GDP대비 104.2%
가계채무 잔액은 16년간 계속 확대돼 2021년 4분기에 사상 최고치인 1,850조9,000억원(약 176조9,871억엔)에 달했다.국제금융협회(IIF) 의 조사에 따르면 GDP 대비 104.2%로 주요 37개 국가와 지역 중 가장 높았다.또 한국 이외에서는 홍콩(92.0%) 영국(89.4%) 미국(79.2%)으로 뒤를 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금리인상 추세
미국의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5일, 약 30년만의 큰폭의 금리인상을 발표.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해 1.50?1.75% 범위로 한다고 했다.
한국은 이에 앞서 5월에는 정책금리를 1.5%에서 1.75%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1.5%로 한 것은 4월의 일로, 2개월 연속의 금리인상 결정이다.이것도 가계 빚을 진 사람들에게는 강렬한 보디블로가 될 것이다.
한국의 1인당 GDP는 일본에 가까워지고 있다.2021년 IMF 발표에서는 일본이 39,340달러이고 한국이 34,801달러다.그러나 일본의 가계채무는 66?7% 정도이다.
아울러 읽고 싶다
이씨 조선시대의 경제 화폐경제 도입한 것은 일본 대한제국 중앙은행은 일본 제일은행
조선반도에서는 화폐경제가 발전하지 않았다
통화를 양산하고 반복되는 인플레이션
화폐경제가 없으면 자본주의는 없다
차관도입과 일본은행이 세관을 주관한다
지난 두 차례 외환위기도 일본이 구제
이씨 조선 초기에는 전매품 소금과 천과 쌀, 잡곡으로 한정된 교환이었다.이후 삼베·면포·쌀 등을 현물 화폐로 거래되었다.1401년 저화를 발행하여 통용을 장려하였으나 보급되지 못하였다.
1423년에는 조선통보라는 동전, 1464년에는 전폐가 만들어졌는데, 이들은 국가의 수세에 사용될 목적으로 쓰이지 일반 사회에 유통되는 것이 아니었다.1678년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이 화폐는 약 2세기에 걸쳐 발행되었지만 각 관청에서 주조하는 것을 허용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1866년 대원군은 재정 살리기와 경복궁 개축을 위해 당백전을 주조하였다.
재정을 살리기는커녕 양산하는 바람에 화폐 가치는 폭락해 1868년 통용이 금지됐다.1883년에는 당오전을 발행해도 화폐가치는 곧바로 급락해 1895년 통용이 금지됐다.1892년부터 백동화를 발행하였는데, 금본위 체제에서 보조화폐로 사용되었다.
즉 한반도 경제는 물물교환이 기본이다.노비 매매도 노비 5명과 소 1마리와 교환되고 있었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은 한반도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차관을 도입시켰다.세관은 일본의 제일은행에 귀속되어 관세 징수를 일본 화폐로 실시했다.화폐정리사업의 자금은 일본으로부터의 차관으로 이루어졌으며, 일본의 제일은행이 대한제국의 중앙은행이 되었다.
화폐경제가 없다면 자본주의 경제는 있을 수 없다.한반도의 근대화 및 화폐 경제, 자본의 유통 등 시장 정비를 일본이 실시하였다.지금도 한국이 국외와 거래할 때 외상구매금 신용장은 일본 사은행이 발행하고 있다.이 신용장이 없으면 한국 기업은 국제 거래를 할 수 없다.
1997년, 2008년 한국의 외환위기 때도 일본은 구제에 나섰다.한국 경제의 근간인 통화 자체가 일본이 신용을 주고 있는 것이다.이씨 조선시대처럼 무작정 통화를 발행해 괴멸적인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10년 동안 두 번이나 외환위기를 맞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원화는 여전히 취약하다.이것이 한반도의 현재에 이르는 통화의 역사이다.
주택담보대출로 가처분소득 감소
가계채무 내역 중 가장 큰 것이 주택담보대출이다.서울 땅값 폭등세는 천정부지로 계속 올라 빚더미에 올라 아파트를 산다.그러다 보니 GDP가 오르고 월급이 오른다고 해도 가계 빚을 갚는 데 대부분이 돌아가기 때문에 가처분소득이 적어진다.쓸 수 있는 돈이 없는 것이다.
일단 월급을 받더라도 그 돈은 터널 직통으로 금융기관에 반납돼 시장으로 되돌아가는 구도다.이것이 한국 경제에서 1인당 GDP의 실태이다.
단지 매너가 나쁘기만 한 여행자
코로나가 가라앉으면서 해외여행이 조금씩 풀리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일본여행이 다시 붐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그들은 일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가까운 여행지로 일본이 선정된 측면이 위와 같은 이유에서 크다.
그리고 일본에 왔다고 해서 돈을 쓰는 것은 아니다.결점을 발견하고는 지적하며 불평하는 그룹도 적지 않다던가.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은 단지 매너가 나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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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반일교수 서경덕이 전 세계 독도 표기를 애플사에 요구?한국을 배려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아일보 번역기사]
반일로 유명한 서경덕
다케시마는 속칭 리앙클리프
한국의 주장을 배려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다케시마를 독도로 하라고 주장?
저 나라에 양보는 금물
애플 아이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에 한국의 '독도'(Dokdo) 표기가 언어 설정에 따라 다르게 나오는 것과 관련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각 국가별 독도 표기명을 제시받고 향후 항의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20일 밝혔다.
서 교수는 이날 오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지난 2019년 전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지도 앱인 '구글맵'에서 각국별 독도와 동해를 어떻게 표기할지 제시받았다"며 "그 결과 26개국에 거주하는 네티즌들이 구글맵에서 독도가 모두 '리안클리프'(Liancourt Rocks)로 검색된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독도는 국내에서만 정확하게 표기돼 있고 일본 내 구글맵 검색에서는 결과 없음이나 다케시마(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 명칭의 다케시마)로 나왔다며 그동안 구글 측에 꾸준히 항의를 했지만 독도로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최근 애플 아이폰 탑재 지도 앱에서도 언어를 한국어로 설정하면 '독도'가 올바르게 나오는데 일본어로 설정하면 다케시마로 표기된다고 한다."를 한 뒤 아이폰에 탑재된 지도에서 독도와 동해를 어떻게 표기할지 제보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애플 지도의 독도 표기 문제는 지난 18일 민간 사이버 외교사절단 '뱅크'(VANK)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당시 뱅크는 "애플이 한국의 독도를 지정받는 언어에 따라 다르게 표기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며 컴스"라며 "이를 수정해달라고 요구하는 항의 서한을 보내고 시정 캠페인도 벌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에도 일본인은 깨닫기 시작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나라에 양보는 금물이다.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정도면 양보해줘도 될까 하는 생각이 운이 다했다.그들은 상대방이 양보했기 때문에 더 많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임 외무상 면담 정부 출범 전 파격 대응 단순한 퍼포먼스 외교에 교제하는 의미는 있는 것인가?
임 외무대신은 25일 오전 한국의 윤석열 당선인이 일본에 파견한 정책협의 대표단을 외무성에서 만났다.
자민당 내에서는 아직 정부로서 출범하지 않은 단순한 의원단과 일본 정부 각료가 회담을 한 것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이들은 정말 대표단인지조차 불분명한 상태이니 외국에서 의원들이 방일하면 외무성은 모두 면회할 것인가.
그리고 의원단을 면담한 이상 윤석열 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면담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불분명해진다.
현재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국제법 위반 상태 시정이 없으면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아직 국제법 위반 상태는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 후 도쿄 시내 호텔에서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자민당 누카가 전 재무대신과 입헌민주당 나카가와 전 문부과학대신 등과 약 1시간 반 동안 회담했다.
그 중 평가할 점이라면 한국 의원단이 1998년 한일공동선언 발행 당시의 한일관계로 돌아가야 한다며 구체적인 발언이 있었을 것이다.
1998년에는 한국의 일본문화 개방과 다케시마에서의 어업권 문제 해결 등 1965년 한일기본조약부터 한일교류의 기본방향으로 구체화된 공동선언이 된다.
단순히 한일관계 개선이라고 해도 그동안 여러 차례 논의해 왔고, 한국 측이 모두 자기 사정으로 파괴해 왔으니 구체적인 목표 지점을 제시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한일공동선언 무렵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 선언은 불과 2년도 안 돼 한국 국회에 의해 실질 무효 상태가 됐다.
1998년 당시로 일단 돌아간다고 해서 다시 이를 무효화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그 점이 빠져 있다.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문제는 국가 자체가 약속을 지키는 구조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대통령이 시세를 생각하고 외교특권에 의해 일본과 약속을 해도 반일구조, 반일헌법을 가진 한국 국회의원들이 입법부의 힘으로 이들을 무효화하는 것이다.
기시다 정권은 지금까지 외교 성과가 전혀 없는 데다 안이한 외교 성과를 서두르고 있는 것일까.임 외무대신은 영국에서 피아노를 쳐서 기분이 좋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 온 한일관계를 몇 번이고 되풀이할 것인가.
한국 대통령 선거서 투표용지 선거사무원 회수?투표함에 직접 들어가지 못하는 이상 사태
5일 실시한 코로나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과정에서 표 투표용지를 선거인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큰 혼란이 빚어졌다.
확정·격리자가 투표한 투표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는 대신 선거사무원이 투표용지를 수집했고 일부 유권자는 "직접·비밀투표 원칙을 위반한다"고 항의했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바구니 등에 투표용지를 넣어 운반하면서 학교 반장, 이장 선거에서도 이러지 않겠다는 반발이 이어졌다.
여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했다.선관위는 투표관리에 미흡했지만 부정소지는 절대 없다며 7일 긴급회의를 열어 9일 일본 투표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정말 놀라운 사건이지만, 한국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투표용지를 선거사무원이 회수 해 버리는 경악스러운 행동입니다.
2020년 한국 총선에서는 투표함 자체가 뒤바뀌었다거나 부정선거에 대해 큰 문제가 있은 후, 게다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상태입니다.
문재인은 6일 이번 논란에 대해 유감이라며 선관위가 경위를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재명 후보는 9일 본투표에서는 혼선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 2020년 총선에서 그 정도 소동이 벌어졌는데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할 수 있다.그 대책을 세워야 할 곳은 대통령의 문재인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일 것이다.
2020년 한국 총선에서는 부정선거가 치러졌다고 난리가 났다.한국은 전자개표시스템을 사용하며, 그 통신기기는 화웨이제 이다.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왜 투표 시스템에 중국산을 도입하는지 불분명하지만 중국으로부터의 부정 접속에 의한 개표 결과 조작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 교수는 여당 압승의 한국 총선은 통계학적으로 비정상이었고 당선자가 바뀌는 레벨 의 부정표가 있었다.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한국은 일본을 민주주의 후진국이라고 야유하지만 일본에서는 선거사무원이 투표용지를 회수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즉 대책이 완료되었습니다.
올림픽 각국 정상 일본 방문에 대하여 개회식 참석의 본뜻을 이해하지 못하다 문재인 일관되게 일본은 국제 약속을 지키라는 것, 그리고 한국 내 현안 사항은 한국 측이 책임지고 해결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이 두 점뿐이다.
한국 측은 항상 일본과 협력해 해결한다.일본이, 일본이, 라고 말하고, 일본이 제시하는 두 가지 요청에 대해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고 있다.도쿄올림픽도 정상회담이 없으면 가지 않으면 다시 일본에 달렸다.
6월 14일 열린 가토 관방장관 정례브리핑에서는 각국 정상의 도쿄올림픽 개회식 참석은 IOC가 창구가 돼 각국 올림픽위원회(NOC)와 조율했으며 이에 따라 일본 방문 정상에 대해서는 회담 여부를 개별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즉 자신이 올지 여부를 결정하고 IOC에 타진하는 것이 먼저다.정상회담과 올림픽 방문은 한 세트가 아니라 우선 개회식에 참석해 자국 선수들을 격려하는 것과 협력해 성공을 뒷받침하자는 게 본래 취지다.
평창올림픽에 내방한 정상들 모두와 회담을 가졌는가?경험자라서 알고 있을텐데?
정상회담이 없으면 안 가겠다는 사람, 세상에서 당신뿐이에요.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없던 이승만-반일국가건국과 되살아나는 김구의 망령
일본에 소개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만, 사진의 인물을 알고 계십니까?이 인물은 김구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일본이 패전한 후에 한국 대통령이 누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가운데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이승만과 다투게 되었습니다.전임 대통령 문재인과 현재 제1야당 당수인 이재명은 이 김구의 사상과 크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이번에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3.1운동을 시작으로 상하이에서 출범한 것으로, 원격지에서 한반도 내로 반일 폭동을 계획하거나 획책했지만 정부로서의 실질적인 기능은 없는 모의정부와 같았습니다.이승만은 임시정부 설립에 관여했지만 설립 이듬해 파벌 항쟁에 패해 실각하고 하와이로 거처를 옮겼습니다.원래 이승만은 대한제국 황제의 고종 퇴위를 요구하는 문서 살포에 가담했다가 투옥되었다가 1904년 특사로 석방된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하와이에 정착했습니다.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는 참여하지만 이듬해 하와이로 돌아왔기 때문에 사실 이승만은 일제강점기를 전혀 겪지 않고 미국의 시선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 될 것입니다.이승만은 전쟁이 끝난 후 1945년에 한반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김구는 '임시정부 주석' 신분으로 귀국을 요청했지만, 임시정부의 정통성은 미국 정부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일반인 신분으로 한반도 남부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합니다.그리고 이승만이 이끄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통합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결성하고 부총재로 취임합니다.즉, 이 시점에서 1919년 3.1운동부터 시작된 임시정부는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미국에 의해 옹립되었던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노선이 깔려 있었습니다.
김구는 순수한 반일로 1896년에는 식당에서 주문한 순서가 아니라 나이가 다른 사람의 주문이 우선이라며 주인이 일본인 상인 쓰치다 조량에게 먼저 배식한 것에 화가 나 집단으로 쓰치다를 폭행, 돌과 철곤봉으로 박살내고 금품을 빼앗고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언 강에 버린 사건을 일으켜 투옥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그 후 특사에 의해 감형되지만 탈옥을 도모하고 3.1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상하이에서 망명정부와 같은 것을 만든 것이 경위입니다.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분키치를 찾아가 사과한 것에 화가 나서 중국 장제스에게 안준생의 살해 의뢰를 했습니다.
■한국어 자막 있음
남북한의 분단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김구는 독자적인 이론을 펼쳐 미소의 영향 아래가 아니라 한반도가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주장을 펴면서 북한의 김일성을 면담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시국은 전혀 그런 상황에 있지 않았고, 김일성으로부터는 전혀 상대하지 않았고, 미국도 전혀 상대하지 않았습니다.이후 대한민국을 설립하면서 초대 대통령을 결정하는 남조선에서의 단독선거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이 선언되고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이듬해 김구는 자택에서 암살당합니다.여기까지는 대략적인 대한민국 건국까지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경위입니다.현재 우리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고, 이것이 법적으로 반일이 국시로 정당화되는 근거가 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위를 보면 대한민국 건국에 있어 임시정부의 정당성은 인정되지 않았다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혀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독재정치가 계속되고 민주화운동으로 이승만 정권이 쓰러지지만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군사독재정치가 됩니다.이후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민주화 선언이 이뤄졌습니다.이러한 흐름에서 한국의 보수와는 이승만의 건국에서 비롯된 정치세력이 되고, 좌파와는 그 반대라는 성질이 있습니다.그 중에서 경제정책 우선이냐 사회보장 우선이냐 하는 경제적인 요소에서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어져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래서 좌파는 공산주의적 성격을 갖고 북한과는 유화적인 정책을 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헌법상 모두 반일이지만 실제로 이승만은 반일로 한국을 건국한 바 있어 친일세력을 차례로 숙청해 나갔습니다.
반면 좌파는 반일이지만 김대중은 일본에 국빈으로 방문하고 있으며 FIFA 월드컵 공동 개최, 한일 문화 교류 해금, 다케시마 문제에 관한 개정 국제법에 따른 새로운 한일 어업 협정 체결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그 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좌파 대통령으로 국빈방문을 하고 있는데, 그 후 한국 내에서 반일운동이 과열되어 갑니다.
노무현 대통령 다음으로 보수 대통령이 2대째 이어지는데, 이명박은 외환위기 때 한일 통화스와프에 대해 스와프가 불필요했다고 발언해 아소 전 총리를 격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케시마 상륙을 대통령 임기 중에 단행하고 있습니다.위안부상이 들어서고, 다음 박근혜 전 대통령도 보수계 대통령인데,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위안부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위안부 동상 설치가 거침없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대일 것입니다.이에 앞서 일본에서는 아베 제1차 내각에서 위안부의 강제연행에 대해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줄 만한 기술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고노담화 내용을 일부 수정하는 각의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이를 바탕으로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부터 대통령에 취임하는 문재인이 매우 귀찮은 인물로 기존 좌파세력과도 전혀 다른 주장을 갖고 있습니다.바로 김구입니다.문재인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김구를 꼽았고, 취임 후 2019년에는 김구기념관 안에서 국무회의를 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그리고 현재 제1야당 당수인 이재명도 김구를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이렇게 보면 문재인 시대의 이해할 수 없는 외교 정책이 아이러니하게도 이해 가능해집니다.김구는 미국을 배제하고 남북한 통일을 북과의 협상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인물이었습니다.문재인 정책이란 미국의 영향을 한반도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GSOMIA의 파기 움직임도 바로 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 다음 북-미-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거나 갑자기 유엔에서 한국전쟁 종전을 희망하는 발언을 했고, 이재명에 이르러서는 미국 때문에 조선이 분단되었다는 상궤를 벗어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즉, 보수에 대한 대항축으로 이승만에 대한 김구를 상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것은 김구의 망상에 불과하고, 미국에서도, 북한에서도 전혀 상대하지 않았던 가공의 역사이며, 현재도 똑같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할 것입니다.문제는 이러한 주장에 한국민의 절반이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구에 대해서는 상하이 임시정부에는 전혀 한반도에 대한 통치실체가 없고, 귀국 후에도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으며, 북과의 독자적 통일노선도 완전히 누구의 평가도 받지 못하고 실제로 정치를 하여 실적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없습니다.그런 다음 만약 김구 시대였다면 하는 궁극의 IF를 내세워 국민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 문재인이고, 이재명이라는 것입니다.이 김구의 가공의 역사를 전제로 한다면 이승만에 의한 건국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즉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난 한국 총선에서 보수 여당이 대패했습니다.이 흐름으로 가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좌파계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일본으로서는 단순히 좌파 대통령이 탄생한다는 견해도 중요하지만, 또한 전후 만들어진 미일, 한일 안보에 의해 유지되어 온 한반도, 동아시아에서의 안보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변혁을 하고자 획책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는 이해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