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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방일 배웅 외교 메시지를 전혀 읽지 못하는 문재인 정권간 총리의 기자회견 발언: "저는 문 대통령이 오실 경우 외교상 정중하게 대응하겠다, 이런 말을 해왔습니다.한국 측은 대통령 보류 발표와 함께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성공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런 점에는 유의하도록 하겠습니다.나아가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을 바탕으로 한국측과 확실한 의사소통을 해 나가고자 합니다."
요점 1은, 「방일하는 경우」정중하게 대응한다(올림픽 개회식 참가등의 방일이 전제.정상회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요점 2는 우리나라의 일관된 입장을 바탕으로 한국측과 확실히 의사소통을 해 나간다(일본측에 양보는 없다는 전제).)
문재인은 이 두 점을 완전히 읽지 못했는지, 이해하지 못한 척 했는지 애초에 첫머리부터 엇갈렸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 없던 이승만-반일국가건국과 되살아나는 김구의 망령
일본에 소개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만, 사진의 인물을 알고 계십니까?이 인물은 김구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일본이 패전한 후에 한국 대통령이 누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가운데 나중에 대통령이 되는 이승만과 다투게 되었습니다.전임 대통령 문재인과 현재 제1야당 당수인 이재명은 이 김구의 사상과 크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이번에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한반도에서 일어난 3.1운동을 시작으로 상하이에서 출범한 것으로, 원격지에서 한반도 내로 반일 폭동을 계획하거나 획책했지만 정부로서의 실질적인 기능은 없는 모의정부와 같았습니다.이승만은 임시정부 설립에 관여했지만 설립 이듬해 파벌 항쟁에 패해 실각하고 하와이로 거처를 옮겼습니다.원래 이승만은 대한제국 황제의 고종 퇴위를 요구하는 문서 살포에 가담했다가 투옥되었다가 1904년 특사로 석방된 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하와이에 정착했습니다.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에는 참여하지만 이듬해 하와이로 돌아왔기 때문에 사실 이승만은 일제강점기를 전혀 겪지 않고 미국의 시선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 될 것입니다.이승만은 전쟁이 끝난 후 1945년에 한반도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김구는 '임시정부 주석' 신분으로 귀국을 요청했지만, 임시정부의 정통성은 미국 정부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일반인 신분으로 한반도 남부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합니다.그리고 이승만이 이끄는 독립촉성중앙협의회와 통합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결성하고 부총재로 취임합니다.즉, 이 시점에서 1919년 3.1운동부터 시작된 임시정부는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미국에 의해 옹립되었던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노선이 깔려 있었습니다.
김구는 순수한 반일로 1896년에는 식당에서 주문한 순서가 아니라 나이가 다른 사람의 주문이 우선이라며 주인이 일본인 상인 쓰치다 조량에게 먼저 배식한 것에 화가 나 집단으로 쓰치다를 폭행, 돌과 철곤봉으로 박살내고 금품을 빼앗고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언 강에 버린 사건을 일으켜 투옥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그 후 특사에 의해 감형되지만 탈옥을 도모하고 3.1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상하이에서 망명정부와 같은 것을 만든 것이 경위입니다.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분키치를 찾아가 사과한 것에 화가 나서 중국 장제스에게 안준생의 살해 의뢰를 했습니다.
■한국어 자막 있음
남북한의 분단이 결정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김구는 독자적인 이론을 펼쳐 미소의 영향 아래가 아니라 한반도가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주장을 펴면서 북한의 김일성을 면담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시국은 전혀 그런 상황에 있지 않았고, 김일성으로부터는 전혀 상대하지 않았고, 미국도 전혀 상대하지 않았습니다.이후 대한민국을 설립하면서 초대 대통령을 결정하는 남조선에서의 단독선거 반대운동을 벌이다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이 선언되고 미국에 의해 좌지우지된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며, 이듬해 김구는 자택에서 암살당합니다.여기까지는 대략적인 대한민국 건국까지 이승만과 김구에 대한 경위입니다.현재 우리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되어 있고, 이것이 법적으로 반일이 국시로 정당화되는 근거가 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경위를 보면 대한민국 건국에 있어 임시정부의 정당성은 인정되지 않았다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혀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대한민국은 이승만의 독재정치가 계속되고 민주화운동으로 이승만 정권이 쓰러지지만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로 군사독재정치가 됩니다.이후 노태우 대통령 시절인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한 민주화 선언이 이뤄졌습니다.이러한 흐름에서 한국의 보수와는 이승만의 건국에서 비롯된 정치세력이 되고, 좌파와는 그 반대라는 성질이 있습니다.그 중에서 경제정책 우선이냐 사회보장 우선이냐 하는 경제적인 요소에서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뉘어져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래서 좌파는 공산주의적 성격을 갖고 북한과는 유화적인 정책을 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헌법상 모두 반일이지만 실제로 이승만은 반일로 한국을 건국한 바 있어 친일세력을 차례로 숙청해 나갔습니다.
반면 좌파는 반일이지만 김대중은 일본에 국빈으로 방문하고 있으며 FIFA 월드컵 공동 개최, 한일 문화 교류 해금, 다케시마 문제에 관한 개정 국제법에 따른 새로운 한일 어업 협정 체결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그 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좌파 대통령으로 국빈방문을 하고 있는데, 그 후 한국 내에서 반일운동이 과열되어 갑니다.
노무현 대통령 다음으로 보수 대통령이 2대째 이어지는데, 이명박은 외환위기 때 한일 통화스와프에 대해 스와프가 불필요했다고 발언해 아소 전 총리를 격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케시마 상륙을 대통령 임기 중에 단행하고 있습니다.위안부상이 들어서고, 다음 박근혜 전 대통령도 보수계 대통령인데,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위안부상이 설치되어 있습니다.위안부 동상 설치가 거침없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시대일 것입니다.이에 앞서 일본에서는 아베 제1차 내각에서 위안부의 강제연행에 대해 군이나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줄 만한 기술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고노담화 내용을 일부 수정하는 각의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이를 바탕으로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그 후 박근혜 대통령 탄핵부터 대통령에 취임하는 문재인이 매우 귀찮은 인물로 기존 좌파세력과도 전혀 다른 주장을 갖고 있습니다.바로 김구입니다.문재인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김구를 꼽았고, 취임 후 2019년에는 김구기념관 안에서 국무회의를 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그리고 현재 제1야당 당수인 이재명도 김구를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이렇게 보면 문재인 시대의 이해할 수 없는 외교 정책이 아이러니하게도 이해 가능해집니다.김구는 미국을 배제하고 남북한 통일을 북과의 협상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인물이었습니다.문재인 정책이란 미국의 영향을 한반도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GSOMIA의 파기 움직임도 바로 그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 다음 북-미-한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거나 갑자기 유엔에서 한국전쟁 종전을 희망하는 발언을 했고, 이재명에 이르러서는 미국 때문에 조선이 분단되었다는 상궤를 벗어난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
즉, 보수에 대한 대항축으로 이승만에 대한 김구를 상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그것은 김구의 망상에 불과하고, 미국에서도, 북한에서도 전혀 상대하지 않았던 가공의 역사이며, 현재도 똑같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할 것입니다.문제는 이러한 주장에 한국민의 절반이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구에 대해서는 상하이 임시정부에는 전혀 한반도에 대한 통치실체가 없고, 귀국 후에도 그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으며, 북과의 독자적 통일노선도 완전히 누구의 평가도 받지 못하고 실제로 정치를 하여 실적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없습니다.그런 다음 만약 김구 시대였다면 하는 궁극의 IF를 내세워 국민을 선동하고 있는 것이 문재인이고, 이재명이라는 것입니다.이 김구의 가공의 역사를 전제로 한다면 이승만에 의한 건국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즉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난 한국 총선에서 보수 여당이 대패했습니다.이 흐름으로 가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좌파계 대통령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일본으로서는 단순히 좌파 대통령이 탄생한다는 견해도 중요하지만, 또한 전후 만들어진 미일, 한일 안보에 의해 유지되어 온 한반도, 동아시아에서의 안보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변혁을 하고자 획책하는 세력이 정권을 잡는다는 이해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반칙해도 이기면 돼.스포츠의 개념이 다른 나라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일본에서는 스포츠는 심신을 단련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에 의문이 없으며, 모든 계층에서도 그것이 요구된다.게다가 각 경기의 왕자도 인격적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에 승자의 인터뷰에 대해서는 일본인은 매우 신경을 쓴다.
체육은 몸을 움직이는 운동을 교육의 하나로 받아들여 몸을 단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과 인격을 향상시킨다는 의미에서 스포츠와는 구별된다.스포츠는 순전히 그 경기나 승패를 즐기는 것으로 여겨진다.즐기기 위해서는 규칙을 지키면서 생기는 형평성 속에서 비로소 승패를 즐길 수 있다.스포츠맨십으로도 표현된다.
한국이 하는 것이 체육일까 스포츠일까 생각하면 안타깝게도 둘 다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스포츠에 정치적인 주장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고 해도 참지 못하고 욱일기에 난리를 치거나 영토 주장을 선수 자신이 필드 내에서 하는 것이 영웅시된다.이기기 위해서는 반칙도 마다하지 않는다.룰은 심판이 보고 있을 때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여기에 스포츠맨십이라는 개념도 없다.
일부 선수들이 하는 일이라는 반론을 받겠지만 상대적인 수로는 한국 선수들의 반칙이 너무 많다.그리고 국제대회에 나가는 선수가 그것을 한다는 것이다.처음에 썼듯이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이라는 개념으로 스포츠를 포착하면서 상위 선수가 될수록 그 단련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으로 국가대표로서 부끄럽지 않은 행동이 요구된다.국제대회에 나갈 수준이 되면 그런 반칙행위를 하는 선수는 거의 없다고 해도 좋다.
스포츠는 대한체육회라는 조직이 모든 것을 총괄한다고 하지만 체육보다는 반일 활동에 열심인 것 같고 그 사고방식은 국제적으로도 상당히 동떨어져 있다.
샤인머스캣을 도둑맞았다.경의를 표하는 온렴대, 제자임을 증명하는 온렴 나누기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온렴대'라는 것이 있다.현재는 M&A 등으로 인수되는 기업의 시가총액에 더한 그 기업의 브랜드나 신용에 지불하는 돈을 의미하며 대차대조표에도 기재된다.
원래 온렴이란 일본 상점 입구에 있는 천인데, 거기에 그 상점의 이름이나 로고가 있어 그 온렴 자체가 자산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일본에는 옛날부터 브랜드라는 개념이 있어 그 이름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기업 인수라도 인수되는 기업이 쌓은 신용에 대해 자산을 얹어 지불한다.
일본의 요리점 등은 역사적으로 많이 따뜻한 물을 나눠 먹기도 한다.요리사가 되기 위해 제자가 되어 수업을 하고 제 몫의 요리사가 되어 간다.
그리고 요리사가 자신의 가게를 차릴 때, 즉 독립에 임하여 스승으로부터 자금을 제공받거나 따뜻한 이름을 쓰게 하기도 한다.이것은 M&A와는 반대의 패턴이 되지만 브랜드나 신용의 교환이라는 의미에서는 같다 .
라면집 등도 이 따뜻한 물을 나눠 제자들이 일본 각지에서 가게를 차린다.
원래 일본에서는 도제제도라는 것이 있어, 일을 가르쳐 주는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공경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다.가계 라면이나 기타 여러 계열의 따뜻한 물을 나눠 먹는 라면집이 있을 것이다.
일본문화에는 옛날부터 브랜드에 대한 생각이 있었고, 도제제도에 의해 그것이 나누어져 있었다.
일본 명품 품종인 고급 포도 샤인머스캣은 왠지 한국 농가에서 재배되고 있다.값은 인방 6,000엔이니 농가는 대박이라고 한다.이 농가는 묘목은 중국에서 수입했다고 하고, 일본은 선진국이니 많이 봐야 한다고 한다.
급기야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한국의 묘목을 훔쳐갔다고까지 말하는 듯하다.구체적으로 어떤 묘목일까.
이들은 멋대로 일본 품종을 빼돌리고 일본 농가는 국내 수요만으로는 부족해 해외에 수출하고 싶어 하지만 모조품이 이미 나돈 상태다.
일본의 장사, 도제 문화로 미루어 일본 농산품을 잠자코 훔쳐 자국에서 돈벌이를 한다는 것은 일본인들이 문화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외국에서 그들은 일본의 농업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왔고, 그 농법을 배운 뒤에는 전혀 모른 체하고 자국에서 그 명품을 재배해 당당히 세계에 수출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종묘법이 2020년 개정되면서 주요 개정 항목은 '해외 반출 제한'과 '지정 지역 외 재배 제한', '증식 허락제'다.일본 농산품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너무 늦은 법 개정이었다.
한국이나 중국에는 브랜드라는 개념이 뿌리내리지 않았다.상품도 상표도 마음대로 훔치다.일본은 다양한 대책이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