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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조선 왕족을 망쳤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일본은 왕가를 정중히 보호했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이 조선 왕족을 망쳤다고 주장하는데 사실인가요?한일합방은 양국이 조인한 조약에 의해 실현된 것입니다.일본은 조선의 왕가인 이왕가를 정중히 다루면서 왕공족제도를 창설했고, 병합 후에도 조선 왕족을 보호했습니다.
마지막 황제가 된 순종은 경성부 창덕궁에 살면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순종은 평일에는 당구를 즐기고 밤에는 축음기를 듣는 생활을 했습니다.제국 호텔의 초대 주방장을 맡은 요시카와 가네요시 부자의 프랑스 요리를 선호하여 거의 매일 먹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방자(李方子)는 1901년생 일본의 전 황족입니다.나시모토노미야 가문의 제1왕 여자로 태어났습니다.방자여왕은 옛 대한제국 고종의 제7황자인 이은에게 시집갔습니다.방자여왕과 이은의 결혼을 위해 일본의 황족과 왕공족의 신분 취급 문제가 생겼지만 결국 황실전범을 개정하여 보충하여 황족 여자와 왕공족의 결혼이 용인되었습니다.
■한국어 자막 있음
1919년 1월 25일 혼의 예정이었지만 직전 이은의 아버지인 고종이 뇌일혈로 사망했습니다.이때 일본의 음모에 의해 독살되었다는 루머가 확산되어 3.1독립운동이라는 대규모 폭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일본 왕족의 결혼 상대 아버지를 일본 측이 독살했다는 뜻을 알 수 없는 루머가 3.1독립운동의 전제가 되고 있습니다.이것이 발단이 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설립되었습니다.현재 반일 운동의 상징적인 이벤트가 지금도 3월 1일에 열립니다.왕족의 결혼이 앞두고 있는 가운데 결혼 상대의 아버지를 일본이 살해하는 장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이런 의미에서도 한국이 기리는 3.1독립운동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상을 입는 기간에 대해 다이쇼 천황은 조기 결혼을 요망하여 황족과 마찬가지로 1년의 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상이 끝난 1920년 방자는 이은과 혼인했습니다.고종의 일곱째 아들 이은은 순종의 이복형제가 됩니다.마지막 황제가 되는 순종이 왕으로 즉위한 후에 황태자로 선출됩니다.이토 히로부미의 제안에 따라 이은은 일본 유학을 결정하고 가쿠슈인 대학에 입학합니다.한일합방 후에도 왕족으로 계승되었습니다.
일본의 황족 방자 여왕과 결혼을 한 후 남자인 이구가 태어납니다.즉, 이왕가의 후계자입니다.그 후 일본의 패전으로 일본과 한반도는 다른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국으로서 조선 왕족을 보호하던 왕공족 제도가 폐지되어 이은과 방자는 신분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신분을 상실한 채로 있던 이은과 방자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 국적도 잃게 됩니다.이는 한반도 사람으로 취급되고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제시되는 일본 국적 이탈자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종전 후 건국된 대한민국은 그 후 왕가를 책봉하지 않았고, 심지어 대한민국 국적조차 이 부부에게 주지 않았습니다.종전 후 이구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에 유학했지만, 그 여권도 대한민국에서 정식으로 받지 못했습니다.그 후인 1962년에 드디어 한국 국적이 되는 것을 인정한다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그 8년 후, 1970년에 이은은 72세의 나이로 사망.아들 이구(李玖)는 2005년에 73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대한민국은 이왕가의 명예를 회복시킬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왕가의 후예로 이원이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순종의 형제인 堈의 손자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옛 왕가에 불과했고, 현재 이원은 경기도 고양시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즉, 일본은 왕가도 왕궁도 소중히 보호했습니다.일본의 패전 이후 한국은 왕가의 명예를 회복함으로써 영국과 다른 유럽 국가나 아시아에서는 태국 등과 같이 왕가를 거느린 나라를 만드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즉 한국은 그것을 하지 않았습니다.일본이 한국의 왕가를 멸망시켰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일본은 이왕가를 보호한 편입니다.
이왕가를 망친건 대한민국입니다.
미일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 문제, 대만해협, 중국, IPEF.일본 방위비 대폭 확대
일본 방위비 대폭 확대
대만 유사시 미군의 "관여"인가 "개입"인가
백악관 공식 회견록
일본의 리더십이란
우크라이나 문제는 대만 문제
아시아 주체의 안보란
바이든 대통령의 방일 정상회의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발표된 내용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적었지만 요약하면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동맹국 결속과 중국 문제, 대만해협 문제에 대한 커밋, IPEF 출범을 위한 경제구상 협력 등이 꼽힌다.
굳이 따지자면 주목할 점은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미국이 지지하는 것, 일본의 대폭적인 방위예산 확대에 대한 미국의 이해, G7을 히로시마에서 개최하고 규칙에 근거하지 않은 현상변경 행동에 대해 유럽 아시아를 막론하고 G7은 단결해 이를 불허한다는 합의를 얻는 장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유사시 미국이 군사적으로 관여(개입)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하겠다고 밝혔다.그리고 하나의 중국 정책에 변경은 없을 것이라며 그것이 중국이 군사력을 사용해 대만을 빼앗을 권리가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단지, 여기서 사용된 get involved to를 관여로 번역하고 있는 케이스와 개입으로 번역하고 있는 케이스가 있다.
백악관의 공식 회견록에서는 Q : You didn't want to get involved in the Ukraine conflict militarily for obvious reasons. Are you willing to get involved militarily to defend Taiwan, if it comes to that?PRESIDENT BIDEN: Yes.
라고 되어 있다(기사 하단 링크 참조).바이든 당선인은 관여의 의미로 답했을까 개입의 의미로 답했을까.덧붙여서 TBS에서는 관여라고 번역하고, 닛폰TV에서는 개입이라고 번역하고 있다.평범하게 번역하면 관여가 될텐데...
최근 미국이 일본에 대해 말하게 된 것이 일본의 리더십에 기대한다는 말이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서는 미국은 무기 공여와 경제제재로 일관해 대체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유럽의 문제로서 영국 독일 기타 유럽의 국가가 대응해야 한다는 태도로도 보인다.
우크라이나 문제는 대만 문제로 일본 정부는 애초부터 생각하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전념해 왔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뜬금없이 나온 말인가, 지금까지와 같은 무기 공여 등에 의한 관여를 의미하는가.
바이든 대통령은 대만 문제에 대해 일체의 변경은 없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해석이 어렵다.종전처럼 변경 없이 대만관계법에 따르면 대만 유사시에도 세계의 대응은 같을 가능성이 높다.즉 무기의 공여를 행할 뿐 싸우는 것은 대만이라는 것이 된다 .
일본 방위비 대폭 확대에 대해 미국이 환영하다니 아시아 문제는 일본이 리더십을 취하라는 메시지로도 보인다.대만해협을 지키려면 일본이 지키라는 말인가.
이번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던 것이 미일동맹은 일본의 유일한 동맹이라는 점, 미일안보에 의해 일본이 지켜지고 있음을 기시다 총리 자신이 발언했다.즉 현재 일본을 지키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일본은 방위비를 대폭 확대해 자국 방위를 자력으로 할 수 있는 힘을 축적하고 대만 유사시에 대해서는 일본 주체가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그렇지 않으면 아시아의 리더가 될 수 없다.미국은 간접적으로 관여할 뿐이라면 누가 아시아 민주주의를 지킬 것인가.그것은 일본밖에 없다.
북방영토에서 공동생활을 한 일본인과 러시아인의 3년간 - 영토반환과 현재의 주민
일본의 영토 문제는 다케시마, 센카쿠 열도, 북방 영토다.이 세 지역은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양국 관계에 있어서나 문제 발생 과정에 있어서나 전혀 다르다.북방영토문제는 간결하게 말하면, 8월 15일에 일본은 항복을 표명했지만, 문서상으로는 9월 2일, 그 후에 소련은 포츠담선언을 추인하지만, 미영중소 이외에 국제적으로는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효일인 1952년 4월 28일이 된다.그 사이 구소련군은 북방영토를 침공해 병합했다.
소련으로부터 강제송환 명령이 일본인 도민에게 전달된 것이 1948년이니 1945년부터 약 3년간 소련병, 소련이민과 일본인과의 공동생활 기간이 있었다.그 시대 일본인 도민들의 증언을 들으면 매우 흥미롭다.
러시아인들은 몸집이 커서 무서웠다. 집에 흙발로 총을 들고 군인들이 와서 손목시계 손목시계라고 하니까 뭔가 싶어 손목시계를 건네주더니 하라쇼 하라쇼 하고 반갑게 돌아갔다.
러시아인 아이는 귀엽고, 귀엽고, 천사 같았다.저렇게 하얗고 눈이 컸고 고양이처럼 초록색 눈동자는 귀여웠다.서로의 집을 오가며 러일 아이들이 함께 놀고 있었다.이는 옛 도민, 일본인의 증언이다.
현재 1만7000명 정도가 살고 있는 북방영토 반환을 요구하는 일본 국민에게 현재 살고 있는 러시아인을 몰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물은 첫 총리가 아베 신조 전 총리였다고 생각한다.당시 북방영토에 살던 일본인들은 영토 반환을 계속 요구했지만 그곳에 사는 러시아인들은 나가 주거를 빼앗으라고 호소한 적이 없는 것이다.
세계 최초 인종차별철폐법안 - 국제연맹 상임이사국 일본 발의.
일본이 세계사 속에 등장하는 것은 청일전쟁 정도부터일까.동양 섬나라의 쾌거에 세계는 주목했고 중국을 강대국으로 여겼던 서양은 중국을 잠자는 사자로 부르게 됐다.
다음 쾌거는 러일전쟁이다.일본해해전에서 승리를 거둔 도고 헤이하치로는 각국 신문의 제1면에 게재되어 세계 신문지상에서 일본인으로서 일면에 게재된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그 후 일본은 세계 최일선으로 올라섰고 1919년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 됐다.
1919년 유엔에서 일본은 세계 최초로 인종차별 철폐 법안을 제기한다.이 시대 이미 일본은 서양의 아시아 지배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마키노 노부아키 전 외상 는 서양 국가들의 아시아 각지 식민지 인종차별을 비판한 것이다. (마키노 노부아키:사진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이 세계 최초의 국제기구 인종차별철폐법안은 찬성이 프랑스 대표·이탈리아 대표 각 2명, 그리스·중화민국·포르투갈·체코슬로바키아·셀부·크로아트·슬로베누 왕국과 일본 11명, 반대가 영국·미국 ·폴란드 ·브라질 ·루마니아 등 5명이어서 찬성 다수다.
일본인들은 인종차별철폐를 서구에서 발전된 개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가장 먼저 인종차별철폐를 호소한 곳은 일본입니다.
당시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납치해 아메리카 대륙을 향한 노예 무역을 하고 있었다.미국은 흑인 노예를 이용해 저렴하게 농산품을 재배해 세계 각국에 수출을 하고 있었다.미국 대표는 만장일치가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부결이라고 주장했다.16명의 만장일치 원칙 등이 있을까.
마키노는 일찍이 다수결로의 의결은 있다며 반론했지만, 당시 이미 대국이었던 미국의 만장일치 원칙이 통과되어 법안은 부결되고 말았다.한일 병합 9년 후이자 대동아전쟁이 시작되기 22년 전의 일이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차별을 받았다, 수탈을 당했다고 계속 말하지만, 일본은 전혀 다른 스케일로 국제기구에서 싸우고 있었다.한일병합이나 대만병합은 서양식 식민지와는 전혀 다른 동화정책이다.동화정책이란 그곳에 사는 일본인이나 조선인이나 대만인이나 대등한 관계에서 권리를 갖고 법치주의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대동아전쟁이란 아시아 각국이 독립을 유지하고 함께 공영하는 이념 아래 아시아 식민지 지배를 하는 백인제국과 일본이 싸운 전쟁이다.대동아공영권 구상이란 생각처럼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국은 한일병합시대에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당시의 인종차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체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학 사관]침략국이 된 전후 일본과 서양 사관|일본의 역사관을 되찾았다
최근 들어 일본의 GHQ 사관에 대한 비판이 공개적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과거에는 도쿄재판사관이라는 표현이 있었지만, 일본의 언론이나 교육 현장에서도 좌파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도쿄재판사관이란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국제군사법정에서 규정된 침략국이라는 국제적인 꼬리표에 대한 반론입니다만, 현재의 움직임은 도쿄재판의 불공평함 뿐만 아니라, 최근 미국 국내에서 기밀정보로서의 기간이 끝난, 태평양 전쟁에 관련된 기록이 공개되어 공개됨으로써, 여러가지를 알게 된 것도 큰 이유일지도 모릅니다.GHQ 사관이라는 것은, 도쿄 재판을 포함한, 그 후의 신탁 통치 시대에 일본 국내의 교육이나 제도, 법률 등 여러가지에 이르는 시점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독특한 구도의 특징이 있습니다.아마도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을 이렇게까지 가치화시킨 것은 미국이 최초가 아닐까요?현재도 미국은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혹은 전쟁을 지원하는 데 있어서 이 정의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즉, 이 가치관은 미국이 정의이며, 일본이 부정의라는 전제 속에서 전후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전쟁에 정의라는 생각이 성립될까요?전쟁은 선악이 아니라 오히려 양국의 정의에 어긋나게 됐다.아니면 치명적으로 파탄이 났을 때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정의를 말해도 전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그럼 전쟁이 끝나고 어느 한 나라가 승리했다고 칩시다.그렇게 하면 양국의 정의에 타협이 될까요?거기에는 전승국과 패전국이 있을 뿐이기 때문에 역시 정의를 말해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일본은 그 교육을 받았습니다.
일본인은 근대사뿐만 아니라 세계사 전반에 대해 서양을 중심으로 한 가치관의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만, 그다지 의문시되는 것은 없습니다.원래 유럽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모토모토는 켈트족이라는 원주민이 살고 있던 땅이며, 유대인이나 로마인 등도 원주민에 해당합니다.현재의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 다양한 유럽 국가들은 게르만 민족이 정복하고 동화된 땅입니다.게르만 민족이란 현재의 중앙아시아에 있던 민족으로 훈족의 확대로 인한 압박을 받아 유럽 지역을 점령해 갑니다.앵글로색슨이나, 프랑크족, 그 외 현재의 유럽 제국의 대부분은, 이러한 게르만 민족의, 각 부족의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크게선주민족으로서는유대인들은이미로마제국에나라를빼앗기고로마제국은게르만인들에의해멸당합니다.슬라브 민족은 원주민이라고 불리며, 그 후의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동유럽 국가들이 그것에 해당합니다.
즉 게르만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침략했는데, 왠지 이것은 게르만인의 대이동이라고 표현됩니다.이동했을 뿐이라는 거죠.결과적으로 켈트족은 거의 모든 지역을 잃었고, 현재는 아일랜드나 스코틀랜드 등이 켈트족이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추수 축제로 유명한 할로윈은 켈트인들의 축제입니다.
■한국어 자막 있음
대항해 시대라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이것은 유럽의 해양국가들이 16세기 중반부터 배를 내놓고 전 세계를 석권해 가는데, 대항해시대라고 하면 꿈이 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우리 유색인종이 볼 때 수백 년 동안 지속되는 식민지 시대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혹은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암흑의 노예 무역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이 대항해 시대 속에서 화려한 발견처럼 불립니다.콜럼버스(コロンブスの卵の)의 계란 일화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나요?발상의 전환이 훌륭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러 온 것 같은 교재입니다.소금을 테이블 위에 뿌려 달걀이 섰다는 요술도 되지 않는 기지 같은 것은 현재는 유튜브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매일 올라오고 있을 것입니다.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원주민인 인디언에게 있어서는 대학살 시대의 시작이며, 19세기 말까지 원주민의 약 90%가 소멸했다고도 하며, 휴스턴 대학의 논문에서 데이비드 스터나드는 이 원주민이 한때 약 1억 명이 있었다고 추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세계의 리더인 자유의 나라 미국이 존재합니다.인디언의 대부분을 소멸시켰을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흑인을 노예로 수입하여 현재도 인종차별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지만, 입장에서는 많은 민족이 사는 자유의 나라 미국은 민족차별을 세계에서 추방하는 민주주의 나라라는 선전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다양한 민족이나 문화에 대한 연구나 미국 내에서 많은 민족과 공존해 가는 역사 속에서 많은 지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차별을 없애 나가려는 의식이 높은 것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도, 그들은 예전에는 원하는 대로, 욕망대로 상당히 위험한 일을 벌이며 잔혹한 역사를 회고하면서도 갑자기 정의의 사자로서의 자칭을 하는 곳이 있습니다.
GHQ사관이라는 것을 일본인들이 깨닫기 시작하면서 헌법 개정의 기운이 높아졌고, 일본이 자율적인 국가를 향해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원래 이 유럽의 확대 정책, 세계 분할 정책 속에 대동아전쟁이 있었다는, 좀 더 척도를 넓힌 시각으로 보면 수백 년에 이르는 전 지구적인 식민지 정책에 저항한 유일한 아시아 국가가 일본이었습니다.
다만, 이 일본의 전쟁도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말하면, 그러면 미국과 같아져 버리기 때문에, 일본의 국익과도 연결된 가운데 행해진 전쟁이라는 시점은 필요합니다.다만 당시 서양에서는 인종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은 전혀 없었고, 유색인종은 노예로 만들거나 죽여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양 국가들과 비교하면 당시 일본은 정신성으로서 상당히 그들보다 앞서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실제로 일본은 이미 국제사회에 인종차별 철폐를 주장하고 있으며, 대동아 공동선언에도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그리고 이는 서양의 식민지정책의 경영실태와 일본의 병합정책이나 식민지정책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분명합니다.이런 것들은 서양인들은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역사일지도 모릅니다.
GHQ사관이나 서양사관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경우, 의외로 알기 쉬워집니다만, 일본이 복잡한 것은, 이 위에 공산주의 사관, 중국 사관, 반도 사관 등에 당연한 것처럼 침식됩니다.전후 일교조는 공산주의자가 많은 사람을 교육자로서 교편을 휘두르고 있거나, 중국 사관이나 반도 사관에 대해서도 있지도 않은, 그들이 주장하는 창작 역사를 마치 들을 필요가 있는 것처럼, 좌파 매스컴이 국민에게 드리워져 왔습니다.위안부 문제 등은 아직도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일본이 스스로의 역사관을 포기한 결과, 시키는 대로 과거에는 그랬는가 하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흔들리게 되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일본인은 일본인의 역사관을 되찾아 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역사라고 하는 학문상의 대처로서 행해지는 것으로, 이웃 나라처럼 역사 자체를 학문적 어프로치가 아니라 정치 문제화, 외교 문제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나라와 일본은 다릅니다.
실제로 서양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는 분명히 다르고, 일본이 보면 서양이야말로 침략자인 것이지만, 과거의 역사는 차치하고 현재의 국제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관으로 일본과 가장 가까운 것은 서구 국가입니다.실제로 아시아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몇 개나 있을까요?이들 역시 과거를 선악이라는 가치관으로 생각해도 답이 없고, 현재 자유주의 국가들의 공유 가능한 정의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선악론을 펴는 논조에는 의문이 있습니다.전쟁이 시작된 이상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세계의 역사를 보는 가운데 선악론으로 전쟁이 끝난 실례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TV 쇼로서는 알기 쉽게 선과 악의 구도에 빠뜨리는 것이 시청자는 알기 쉬워지고 열광하기 쉬워집니다.다른 나라끼리의 전쟁에 감정이입하여 자신들은 정의의 논진의 편에 있다고 믿고 싶을 것입니다.그러나 전쟁 중에는 정보도 차단되어 실제로 무엇이 진실인지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가 이루어지고 러시아 경제는 곧 파탄날 것이라는 논조가 당초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을까요?러시아의 경제는 천연자원의 수출이 주요 산업으로, EU제국이 고객이 되고 있어, 변함없이 석유나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으면 주요 산업은 지켜진 채입니다.예를 들어 공산품처럼 세계의 기술 경쟁 속에서 최첨단을 경쟁하고 있는 산업이라면, 경제 제재를 받아 자금융통이 어려워져 도산해 만들 수 없게 되면, 그 후 10년이라도 경과하면 다시 참가하려고 해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일본의 반도체 산업 등이 그렇겠죠.그러나 천연 자원은 그런 일이 없고, 열화도, 후퇴도, 감소도 하지 않습니다.10년 후에 파든 지금 파든 같은 품질의 천연자원을 채굴할 수 있을 것입니다.즉 러시아의 주요 산업은 없어지지 않습니다.게다가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지역은 우크라이나 영토의 7.2%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에 대한 보도에 이 광대한 점령지에서 나오는 러시아의 이익에 대해서는 전혀 말할 수 없습니다.
점령 상태로 전쟁이 끝날 경우 어떻게 될까요?이 지역은 100년 후에도 200년 후에도 러시아 그대로일 것입니다.그렇다면 경제 제재는 100년 후에도 계속되고 있을까요?즉, 점령 정책이라는 것은 이처럼 100년의 기간으로 생각하면 최종적으로는 경제적인 이익이 됩니다.예전에 다케시마를 한국에 주면 된다고 했다, 현재 국회의원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의미를 모르는 것 같아요.그 근해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한국에 어획하면 일본은 물고기 한 마리 분의 금액 손실이 됩니다.이것은 매일 발생하는 손실입니다만, 어획량으로 계산하여 100년, 200년으로 계산할 경우 도대체 얼마의 이익을 제공할 생각입니까.
우크라이나를 본 경우도, 다케시마를 본 경우도 사실 정의 같은 것은 전혀 없고, 영토를 지키는 것은 군사력 이외에는 없습니다.이것들을 외교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못하고 있다는 실적만이 일본에는 있습니다.
이처럼 선악론을 펴서 전쟁이나 분쟁이 끝날 것 같은 발상은 망상에 불과하며 외교에 의해 전쟁이 어떤 경우에도 회피될 수 있다는 생각도 망상일 것입니다.외교가 파탄된 후에 전쟁이 일어나니 이를 외교로 해결하자는 생각 자체가 파탄입니다.
즉, 보통 국가는 외교와 군사를 모두 강화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입니다.일본의 경우, 항상 양자택일론을 전개합니다.외교냐 군사냐 하는 선택입니다.둘 다 하면 좋겠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주류가 되지는 않습니다.군사 단계에서는 이미 외교가 기능하지 않으며, 외교 관계가 기능하고 있을 때는 군사 단계가 아닙니다.이것을 어느 쪽을 선택하라고 압박하는 것이 일본의 주로 야당 세력입니다.일본 정부는 외교만 하면 되고 나라를 지킨다는 책임을 미국에 떠맡겨 왔을 뿐 미국이 지키지 않은 다케시마와 북방 영토는 빼앗기고 미일 안보 범위 내라는 말만으로 아슬아슬하게 센카쿠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실력으로 지키는 것을 포기하라는 입후보자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나라.신기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