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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왕조 말기의 일본 유학 붐 - 근대화의 기회를 놓친 한반도와 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내전에 돌입한

2022-05-10  카테고리:일본

청 왕조 말기의 일본 유학 붐 - 근대화의 기회를 놓친 한반도와 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내전에 돌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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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일본유학 붐이

중국에서는 일본 유학 붐이 청일전쟁 이후에 생겨난다.유학의 목적은 일본의 근대화와 부국강병 정책을 배우는 것이었다.광서제하, 강유위 등 중국 지식인들이 '변법자강' 유신운동을 실행했지만 보수세력의 탄장으로 좌절한다.그 후 과거제도의 폐지(1905년), 근대학교제도의 창립(1904년), 「교육종지」의 발포(1906년) 및 의무교육의 시행(1907년) 등 당시의 교육개혁은 일본에 모델을 요구한 것이다.

13명을 시작으로 일본 유학이 스타트

1896년 처음 청나라 정부에서 13명의 젊은이가 일본 유학에 파견돼 도쿄고등사범학교 학원에서 3년간 일본어와 화학·물리·수학 등을 공부했다.신해혁명인 1911년까지 약 2만 명 정도의 유학생이 일본에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MEMO

정계의 저명인사로는 저우언라이, 이대별, 진독수, 우랑배, 동필무, 장제스, 마중성, 왕자오밍 등이 있다.쑨원은 1895년 망명 형식으로 일본에 왔다.문화인으로는 루쉰(魯迅), 곽말약(郭若、), 전한(田漢), 뭣향응(何香凝) 등이 있었다.




청일전쟁에서 독립국가가 된 조선

이씨 조선이 중국형 근대화를 지향하는 한편 갑오농민전쟁을 계기로 청일전쟁이 발발 하고 일본의 승리로 한반도는 독립국가가 되었다.일본형 근대화를 요구한 김옥균이 암살된 것은 청일전쟁이 시작되기 약 4개월 전이다.

근대화의 기회를 놓친 한반도

한반도에서의 근대화 움직임은 사실 중국보다 빨랐다.그러나 그것은 큰 너울성이 되지 않았고, 구 정치체제의 이씨 조선에 의해 무너졌다.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친중 정책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그리고 중국은 청일전쟁 패배 후 곧바로 일본형 근대화를 위해 정책 전환을 한 것이다.일본에 망명했다가 상하이에서 암살된 김옥균에 대해 한반도의 쑨원이 되어야 할 인물이었다고 미야자키 도도텐은 표현하고 있다.미야자키는 이누카이 쓰요시 등과 함께 쑨원의 신해혁명을 뒷받침한 인물이다.한반도는자력근대화에실패한것이다.

청조가 쓰러져도 혁명의 정신은 계승되지 않고

결과적으로 1911년 쑨원은 신해혁명에 성공하고 중화민국을 건국하는데, 선통제의 퇴위 조건에 북양군벌 위안스카이를 대총통으로 하는 교환거래를 했기 때문에 청조가 종언하지만 위안스카이가 독재색을 강화하게 되었다.그리고 이를 타도하는 제2혁명에 돌입한다.북벌을 완수하고 장제스가 국민당의 총통이 된 후에도 서양의 중국 분할은 진행되었다.쑨원의 혁명정신은 일본유신에게 배워 함께 서양과 대치하며 독립을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중일전쟁으로 출범한 왕자오밍 정부

중국 분할이 진행되는 가운데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혁명의 정신은 왕자오밍의 난징 임시정부에 인계된다.손문의 측근이자 일본 유학 경험을 갖고 대동아회의에 참석한 인물이다.오랜 시간에 걸쳐 중국은 혁명에 실패했다.오히려 국공내전은 계속되고 쑨원의 혁명은 고사하고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진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한다.쑨원이 목표로 한 일본의 유신은 근대화뿐만 아니라 아시아 안에서 부국강병을 달성하여 서양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자주독립을 지키는 데 있었다.



POINT

유색인종 국가에서 자력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는 일본뿐입니다.아시아 각국이 근대화를 목표로 하기 위해서 일본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